■ 그리스도 세운 敎會는 하나 分裂은 人爲的…共同責任 「再一致 方案을 提示한다」
◇그리스도敎 一致律令 解說 / <강사 尹炳煕 신부(哲博·抱川본당主任·本紙論說委員)>
그리스도는 전 인류의 구속 사업을 위해 하나의 교회를 수립하셨으나, 중간에 유일한 하느님의 교회안에 뜻하지 않았던 분열이 생겼으며 그 원인을 추구해보 면 인간적인 요소가 개입돼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분열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모름지기 쌍방이 공동으로 져야 할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가 바라시는 교회 일치화를 위해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할 시기가 왔으니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며 일치화 운동의 한 계획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동집회를 통한 경험자들의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고.
▲둘째 각 교파간의 교리연구를 추진시키며
▲세째 공동기도회를 가지며
▲네째 신앙적인 생활과 규율의 형태, 전례의식의 다양성, 신학적 진리 탐구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봉사의 기회를 갖도록 하며,
▲다섯째 가톨릭측은 갈라진 교회의 공동유산에서 나온 참된 그리스도교적 재산을 인정,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럼 일치운동의 목표는 어디에 세울 것인가? 부르심(VOCATION) 앞에 고도의 충실성을 살려 교회의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와야 할 것이며 따라서 신앙의 유산과 구별되는 윤리, 교회규율, 교리를 표명하는 방식에 있어서 현세적인 것과 관련된 문제들이 적당한 시기에 올바르게 쇄신돼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참된 「에큐메니즘」에 불가피한 전제조건을 살펴보면, 크리스찬들의 내적 회심과 크리스찬적 생활의 실천을 들수 있으며 교회일치를 목적으로 하는 공동집회와 기도의 필요성을 가진 형제들의 심정을 정확히 파악·이해하며 쌍방이 동등한 입장에서 신학적 문제를 다루는 집회나 세미나 등을 개최해야 한다. 몇가지 여기에 덧붙이고저 하는 것은 신학의 규정 다른 규정 특히 역사적인 규정이 진리에 적응토록 전달해야 하고 펑신자와 수도자들을 위한 신학연구와 교육이 필요하며 사회적인 제문제 해결을 위해 그리스도교적원리와 방법을 총동원 협력하고 완수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일치를 이룩해야 할 교회를 살펴보면 동방교회 개혁교회 프로테스탄트교회 영국교회(성공회) 등이 있으며 동방교회에 대해서는 우선 전례의식과 영신적인 전통 및 교회법, 신학교리의 공통점 등에 중점을 두고 고찰해야하며 일반적으로 갈라진 교회, 종교단체에 대해서 교회일치의 정신과 상호간의 이해를 위한 대화의 기초와 자극이 될 몇가지 점을 제시해보면
그리스도의 구속사업, 마리아의 임무등 양교회간의 현격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되시는 하느님을 신앙하는 그리스도를 교회생활의 원천과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안에서의 일치가 가능함을 알려주고, 성경에 대한 애착, 존경과 연구를 계속하며, 성세성사(세례)의 수여로 그리스도와 결합되고 하느님의 생명의 한지체로 재생됨을 인식시키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거룩한 만찬의 기념,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안에서의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실천을 수반시키는 점 등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일치화 운동을 방해하는 어떠한 경솔함이나 지혜롭지 못한 열성도 이를 배격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치운동은 사도들과 교부들에게 수락되고 전래된 진리에 완전 충실하고 보편적이며 성실하며 가톨릭교회가 언제나 고백한 신앙과 합치되야 하고, 주님께서 세기의 흐름에 따라 당신지체(백성)가 증가되기를 원하신 그 충만함을 지향하는 것이라야 한다. 요컨데 「신앙교리」의 일치에 앞서서, 「사랑」의 일치, 그리스도교적 참된 생활과 규범의 실시를,
양교회간의 전문적 또는 일반적 연구대화와 공동기도, 상호이해와 협조로써 이룩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그리스도께서(모두가 하나이 되기를 원하시고 또한 모든 크리스찬이 희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일치로 나가는 첩경이 되는 것이다.
■ 敎會一致運動은 우리가 시작해야
◇敎會一致의 諸問題 / <강사 河안또니오 神父(釜山東港洞 본당주임)>
우선 「루까복음」 32장 41~49절의 내용을 가지고 말씀 드리겠다.
오늘날 예수님을 모실 교회는 비단 천주교회 뿐만아니라 프로테스탄 교회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흔히 마리아 교회라고 불리우는 천주교회 외에 프로테스탄 교회를 요셉교회라고 나는 부르고 싶다.
마리아교회는 집안에서 예수님을 잘 보았고 요셉회는 밖에서 많은 연구를 했었다. 교회일치율령헌장에 보면 『비록 그들에게 결함이 있다 생각할지라도 갈라진 교회와 단체들은 구원의 신비에 있어 많은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가톨릭교회에 맡겼던 은총과 진리의 보고에서 흘러나오는 능력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함을 거절하지 않았읍니다. 성모마리아는 완전한 사람이었으나 요셉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더욱더 전한 가족 즉 거룩한 가족이 되었다.
「예루살렘」으로 떠났을때 그들은 얼마나 기뻐했으며 성전에 들어가자 요셉은 목수의 아들로서 우렁차게 찬송가를 불렀고 마리아는 조용하고 경건한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사랑하던 예수님을 잃어버렸으니 그들의 큰문제가 아닐 수 없었으며 잃어버린 책임은 누가 져야할 것인가? 요셉보다 더 완전한 마리아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마도 당시의 환경의 혼잡에 그 책임을 돌리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인류도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 틀림없으니 그렇지 않으면 왜 기독교 신자인 구미인들이 세계대전을 두차례나 일으켰고 제3차 대전을 일으키려 하는가? 한국에서는 어떤가? 많은 신자들은 불신자들에게 예수를 중심으로 한 가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여기에 반성과 자각이 요구되며 믿음의 혁명을 일으켜야 하겠다.
다시금 일치율령 제4조를 보면 성신의 은총을 받은 많은 신자들이 기도·말씀·활동 등으로 그리스도가 바라시는 일치의 완성을 위해 최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공의회 후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시대요구에 응해 일치화운동에 적극 참가하기를 권장한다고 했다. 이제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말도 주고받지 않던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은 그런 사고방식에서 탈피할 때가 왔으며 일치율령에 따라서 그들을 먼저 찾음으로 갈라진 신자들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일치화의 첫걸음을 어머니다운 사랑을 가진 우리가 먼저 내디뎌야 하겠다. 허다한 난관과 오해가 따를 지라도 기필코 이것은 섭취해야 할 것이다. 일치운동이란 곧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는 것이며 그를 찾아내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귀함을 안 마리아와 요셉의 심정을 가져야겠다.
일치화 운동은 신자들의 문제이며 각자에게 책임이 부과돼 있다. 즉 각자능력에 따라 자발적인 해결을 가져와야 하겠다. 신학자는 신학문제를 사목자는 사목문제를 신자들은 일상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예수님을 찾는데 있어서 요셉과 마리아는 공동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니 상대의 맡은 일 자기의 할일을 알아야 하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의 광장을 마련해야 한다.
■ 7月 「웁살라」 總會 「一致」의 里程表
◇WCC 過去와 現在 / <강사 姜元龍 목사(크리스찬 아카데미하우스 院長)>
19世紀 후반부터 敎會分裂에 대한 반성이 대두하기 시작했지만 교회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원리가 확인되고 구체화되기는 2世紀에 들어와서 부 터이다. 一致運動은 宣敎, 信仰과 職制, 生活과 實踐 등 3면으로 나타났다. 宣敎면에서 1910년 영국 「에딘바라」 會議이래 교회자체의 발전문제, 알력의 조화, 교회 힘의 낭비를 막는 문제가 주관심으로 논의 되었다. 信仰과 職制면에서는 「뉴욕」에서 準備會議원칙이 확인되고 1920년 「즈네브」에서 결성된 最終準備委員會를 거쳐 1927년 國際會議가 처음으로 성립하였다.
교회는 인간의 전체생활에 책임이 있다는 새로운 사회문제의 자각으로 1937년 「옥스포드」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국제회의가 성황을 이루었다. 이같은 배경을 가지고 戰後의 진통을 겪으며 1943년 8월 「암스텔담」에서 世界敎會協議會 창립총회가 비로서 이루어졌다. 그후 1961년 印度 「뉴델리」 WCC 총회때는 181교파, 577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는 선교면의 IMC와 WCC가 완전히 합치게 되었고, 正敎會대표가 대거 참여하고, 가톨릭 「옵서버」도 정식으로 참여했다. 주제는 주로 一致·證據‧奉仕였다.
이 大會 이후의 큰 변화는 今年 7月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개최되는 제4차 회의에서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가톨릭과 WCC가 어떻게 구체적인 협력이 가능하나 하는 문제와, 지금 준비회의가 진행 중인 평신자의 문제와, 후진국과 선진국 사이의 經濟的 不均衡을 교회가 어떻게 해결하고, 機械文明으로 인한 사회변동에서 生活樣態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다루어질 것이다. 一致문제는 예언할 수 없지만 지금 구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