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현대) 精神(정신) 衛生(위생) ②] 反復(반복)
실패행위 거듭하는 問題兒(문제아)
욕구불만·좌절감 등 行動(행동)의 潜在動機(잠재동기)찾아야
處罰(처벌)보다 치료적 지도 필요
교실에서 한 학생이 장난이 심해서 유리창을 깨뜨리고 벌을 섰다. 얼마 안가서 그 학생은 또 한번 유리창을 깨뜨는 실수를 저질러서 학부형이 호출되고 변상까지 해놓는 소동까지 일으켰다. 그 다음에도 이런저런 문제를 자주 일으키던 끝에 교실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버릇 즉 도벽까지 나타나는 정도가 되어 이 학생은 드디어 「문제학생」이라는 「렛텔」이 붙게까지 되었다.
보통학생들도 한두번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없을 순 없다. 그러나 한번실수를 하고 훈계를 받는다든가 처벌을 받고 나면 다신 그런 일을 안하려고 결심하고 또 결심한대로 실천도 한다.
오히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으로 귀중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위 문제학생이라는 경우엔 그것이 좀 다르다. 한번 실패하면 고칠 줄 모르고 자꾸 그것을 거듭한다. 다시는 안해야겠다고 느끼지도 못하거나 느낀다고 해도 말뿐이지 실천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며 결국 실패행위를 거듭하고 거듭한다.
어떤 때는 일부러 교사나 부모의 분노를 일으키기 위하여 저지르는 고의적인 행동과 같이도 보인다. 이모든 반복적인 행동을 사실상 본인도 일을 저질러 놀때마다 왜 그렇게 되는질 모르며 지도하는 교사나 부모도 「무의식」이 행동을 지배한다는 조그마한 원리를 모르면 정말 당황하게 된다.
어딘가 욕구불만이 있거나 좌절감에 허덕이는 학생임을 미리 알고 그 문제 행동 배후에 숨어있는 잠재동기를 찾아내야 된다. 어떤때는 정말 복수심을 만족하기 위하여 문제행동을 일으켜 끈덕지게 교사나 부모를 괴롭히는 예도 있다. 물론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런 경우 『너 무언지 교사가 못마땅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하고 직언으로 야단을 쳐보아도 오히려 겁만 집어먹고 적대심을 일으켜 복수욕은 더 불타게 됨으로 문제행동은 거듭되게 마련이다.
먼저 무엇때문에 그런 복수심을 가지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주의깊은 관찰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때에 따라 교사의 특별한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그런 문제행동을 거듭하는 예도 있을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과를 올림으로써 현실적으로 인정을 받을려고 하는 대신에 평소에 몇번 실패한 것을 계기로 지나친 좌절감에 허덕이던 끝에 무의식적으로 왜곡된 방향으로나마 교사의 관심을 얻고자하는 얕은 수법으로 또는 유아적(幼兒的) 동기에서 일으키는 행동이다.
이런예에 있어서도 물론 자주 야단을 친다든가 처벌을 준다든가 하면 오히려 그것은 잠재동기를 만족시키는 셈이되어 버릇을 조장시켜주는 결과가 된다. 이런 경우 처벌보다 치료적 지도가 필요한 것이지 처벌은 악순환적으로 문제행동을 반복조장하여 「병증이득」을 잠재동기적으로 노리는 「노이로제」의 경우처럼 「실패이득」을 경험케 해 준다.
반복을 특증으로하는 문제행동을 흔히 그러기 때문에 「신경증적 행동」이라고도 한다. 이런 행동의 잠재동기로서는 비교적 가까운데서 발생한 것이 있다. 현재 환경의 비교적 눈에 띄기 쉬운 것에 기인하여 하지 않는 일이 의외로 잠재동기로 되는 일도 있지만 이런 것은 「쎈스」가 있는 지도자라면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의 생활주변을 평소에 관찰해둠으로써 곧 그것을 발견하여 분쇄할 수가 있다. 그러나 좀더 복잡한 것은 대개 생활사를 면밀히 검토해 보아야 알 수 있는 어렸을 때의 부모나 형제간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어떤 특별한 경험이 현재의 환경에서 엉뚱하게 나타나는 수가 있으므로 상당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로 정신분석을 시도해야 그 뿌리를 찾아 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아주 어렸을때의 교육환경이 좋치 못하여 근친간(近親姦)적 욕망의 자극을 받은 후 이것이 잘 처리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될때 인간의 양심은 이것을 억압함으로 무의식 계로 사라지고 만것이나 무의식계로 억압된 충통은 이것이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억압이 약해질 때마다 다시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됨으로 드디어는 무엇인가 다른 방향으로 가장(假裝)되어 그 충동이 들먹어리게 되고 그 가장된 형태의 충동이 엉뚱한 행동을 일으키게 되는 수가 있다.
그리하여 여러가지로 성적 범죄를 저지르지만 그것은 자극만 받고 만족하지 못했던 근친간적 욕망을 상징적(象徵的)으로 달성해보자는 반복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 수가 많다. 그런 상징적 행위는 비단 성적범죄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더욱 복잡하게 위장된 다른 행위(도벽 또는 소소한 실수행위)로도 나타나며 그런 행위의 결과 자기에게 부닥쳐오는 처벌을 마치 시초의 근친간적 욕망때문에 생겼던 양심적 가책을 위무하는 격으로 환영하고 즐기게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처벌만은 문제해결에 힘이 없고 문제행위를 조장하게 될뿐임은 물론이다.
많은 가톨릭신자들이 자기의 실수행동을 성찰하고 고해성사를 받는다. 그러나 성찰이 무의식계에 잠재된 난대 없는 「콤프렉스」에 까지 채 미치지 못할때 문제행동은 반복된다. 얼굴에 묻은 먼지와 때를 자주 씻으면 얼굴이 깨끗해지기는 하지만 속병이 있어서 얼굴색이 좋지못하면 씻고 화장만 해도 좋와지지 않으며 속병이 없이 건강한 몸에서 솟아나오는 얼굴색처럼 씩씩하거나 환해보이지는 못한다.
아마 역사상 성인이라고 일컫는 분들의 경력을 보면 대개 「위대한 성찰」을 경험한 분들일 것이고 그 성찰은 어디까지나 의식계의 일뿐아니라 「무의식」의 구석구석까지도 스스로 분석하고 들여다보는 정말 「성총을 받을 수 있는 성찰」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兪碩鎭(醫博·베드로 神經精神科院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