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5) <第一話(제1화)> 나를 만나보시려면 ⑤
발행일1968-03-17 [제610호, 4면]
『안방에 걸린 사진들의 사진을 누가 갈아 끼었느냐 말이어요?』
승재는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빠져나갈 곳이 없는 울분이 꼬투리만 있으면 아무데고 솟구쳐 폭발하려는 기세이었다. 승재 의 물음이 너무도 돌발적이어서 정옥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리하여 그저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럴수록 승재의 흥분은 더욱 사나워진다.
『너무 지나치게 남의 내적생활(內的生活)에까지 간섭하는 건 불쾌합니다. 물론 이렇게 살림을 돌보아 주시는건 고맙기 한량없읍니다. 그렇지만 지나친 간섭은 삼가주셨으면 좋겠어요.』
승재는 준엄한 눈초리로 정옥을 힐책하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도무…』
그제서야 정옥은 떠듬떠듬 대답을 하려했으나 승재의 날카로운 시선에 눌려서 제대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침을 떼지 마세요. 어제 아침까지도 안방 사진틀에 은희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누가 그 사진을 풍경화로 갈아 끼웠읍니까?』
『은희의 사진이라구요』
정옥은 의아하여 반문하다가 마루에 걸린 사진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었다.
『저게 그 사진 아닌가요』
『예?』
승재는 깜짝 놀라서 마루구석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았다.
『앗!』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가? 은희의 사진은 마루 사진들에 버젓이 걸려있지 않은가!
『아마 선생님께서 잘못 생각하신게 아닐가요? 제가 알기에는 사진들에는 아무도 손을 댄 사람이 없는데요.』
대답하는 정옥의 태도에는 구김살 하나 없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참 이상하군! 어째서 안방에 있던 사진이 마루로 나와 있을까?』
승재는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는 분명히 풍경화가 사진틀에 걸려 있었다.
『그거참 이상하다. 분명히 은희의 사건은 안방에 걸려있고 풍경화는 마루에 걸려있었는데 그것이 서로 뒤바뀌다니…』
『아마 선생님께서 착각하신게 아닐까요? 저는 무심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마는 애엄마의 사진은 처음부터 마루에 걸려있었던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어요. 이건 반드시 누가 일부러 계획적으로 해놓은 일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누가 그런 필요도 없는 장난을…』
『모르지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게 아닙니까. 그래 정옥씨는 통이일에 대해서 생각이 나지 않으신다 그런 말씀입니까?』
이렇게 반문하는 승재의 눈에는 의혹의 빛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아니 그의 입가에는 엷은 조소까지 떠돌고 있었다.
『모르고 말고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 수가 있겠요.』
승재는 코웃음을 치고나서 똑바로 정옥을 바라보았다.
『이 기회에 분명히 말씀해 두겠는데 이렇게 애를 쓰고 살림을 보아주시는데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무엇으로나 기회있는 대로 보답을 하려고 생각하지마는 저의 사생활에 까지 깊은 간섭을 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원 선생님도 웃으운 말씀을 다하시지 제가 어떻게 선생님의 사생활에 깊은 간섭을 하겠어요. 그건 얼토당토않은 말씀입니다.』
정옥은 뺨이 볼그레하게 물들며 낮으막이 대답하였다.
『그러시다면 천만다행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글쎄 저도 이상하게 생각이 되는군요. 참말로 그래 애 엄마의 사진이 안방에 걸려있던게 마루로 나왔을까요?』
『그럼 정옥씨는 내가 거짓말로 생트집을 잡는 줄로 아십니까?』
『설마하니 그렇지야 않으시겠지마는 혹시 취중에 착각이라도…』
『천만에요. 요즘 마음이 지향없어서 술의 힘을 빌리고는 있지마는 저는 정신착란을 일으킬 만큼 술주정뱅이는 아닙니다.』
승재는 열이 벌컥나서 항의하였다.
『그야 저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마는 일이 참으로 이상해서…』
『인제 그만두시오.』
승재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리었다. 방으로 들어가서 벽에 걸린 사진틀을 바라보며 새삼스러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아리숭하였다. 분명히 은희의 사진은 안방에 걸려 있었는데 그것이 마루의 사진틀과 바뀌어 걸린 것이다. 혹시 자신의 착오나 아닐까? 그럴리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의 짓일까? 정옥이 밖에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정옥이는 전혀 모르는 눈치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짓을 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정옥은 말은 하지 않지마는 승재의 요즈음 태도에 공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승재가 은연중에 잘 알고 있었다.
누님의 말대로 그는 이집의 주부가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리하여 은희에 대한 승재의 정을 한시 바삐 끊어 놓으려는 것이나 아닐가? 그렇다면 괘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정옥이라면 승재는 누님이 아무리 권해도 그를 기어히 물리치리라 다짐했다.
정옥은 죽은 은희와 벌써 오래전부터 친한 사이이고 종교적으로는 죽은 은희의 대모이다. 그리하여 옛날부터 승재도 그를 알고 있었다. 이제 승재가 상처를 하고 정옥은 남편을 여이었으니 누님의 말대로 두 사람의 결합이 성립된다며는 그것은 집안을 위하여 서로 편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 사정을 미끼로 승재의 사생활 깊이까지 파고든다며는 그런 사람과는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승재는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울분을 억제하며 마루의 사진들을 방에 들여다 놓고 안방의 풍경화와 다시 바꾸어 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