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宗敎觀(종교관)] ②「영원한 行人(행인)」으로서의 生死觀(생사관)
「주시옵신 이몸 실은, 실로 초라하옵는 목숨의 셋집…」
발행일1968-03-24 [제611호, 4면]
이번 民衆書館에서 출간되는 내 詩集의 이름이 「假宿의 램프」이다.
지금 내가 생존하고 있는 이 세상, 이 세계, 이 현실, 이 오늘, 이 순간을 나는 내 어떤 原宿을 찾아가는 中途에 있어서의 임시 숙소, 假宿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붙인 이름이다.
또한 1962년에 출간한 시집 이름이 「낮은 목소리로」이고, 그 副題가 「臨在와 不在」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臨在를 살고 있는 것이며 항상 그 不在한 存在를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붙인 이름이다. 다시 말하면 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걸쳐있는 내 生存의 실태를 생각해본 것이며 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의 그 實存의 풍경들을 정리해본 시집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주시옵신 이 몸, 실은
주시옵신 「목숨의 집」
이옵니다.
「보이옵는」 이 세상, 잠시 있다가 올 「목숨의 집」이옵니다.
멀고먼 곳에서 잠시들 들렸다. 가을 중도의 집, 주시옵신 이몸, 실은 실로 초라하옵는 목숨의 셋집이옵니다.
시집 「낮은 목소리로」 속에서-제57장
나는 이렇게 이 살아있는 내 현실에 대해 항상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살아왔다. 또한 이러한 시가 있다.
헤어지는 연수를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中略>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中略>
두고 가는 것을 배우 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시집 「時間의 宿所를 더듬어서」 속에서-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그렇다고 해서 나는 현실을 도피해서 사는 사람도 아니요, 염세를 해서 사는 사람도 아니요, 허무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우리 生者들에게 엄숙히 내려져있는 그 사실-죽음, 그 죽음을 가장 엄숙히 인식하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순응을 가장 고요히, 가장 평화로이, 가장 나 다웁게 하기 위하여 이 현실을 가장 충실히 그렇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旣成的인 종교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생각 나의 말을 길, 혹은 다리 놓아가며 이 「보이는 세상」에서 저 「보이지 않는 세상」을 더듬어갈 뿐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나의 말로 나를 살고, 나의 말로 나를 죽고, 나의 말속에 영생하리라는 내 스스로의 生死觀 내지 그 종교에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낱맡은 잠시 자리를 옮긴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잠시 그 자리를 옮긴다는 말로 생각을 하며, 生者의 세계에서 死者의 세계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그 죽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나는 無宗敎者의 종교자라 할까! 죽음을 믿는 사람이며, 죽음을 통해서 이사를 가는 사람이며, 또 그 세계에서 또 그 다른 세계로 옮겨갈 사람이라는 것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이걸 줄여서 말 하면
나의 말(詩)이 곧 나의 종교이며 영원한 行人! 그것이 나의 死生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