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6) <第一話(제1화)> 나를 만나보시려면 ⑥
발행일1968-03-24 [제611호, 4면]
사진을 가라 끼고 나서 승재는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옥이 밖에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정옥은 저렇게 시침을 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사진이 바뀌어졌을까? 만일에 죽은 사람에 대한 승재의 정을 한시바삐 끊기 위해서라면 사진을 아주 치워버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루로 옮겨놓는데 그친 것은 또 웬일일까? 아마 아주 치워버리기는 미안하니까 마루구석 쯤으로 옮겨 놓는데 그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조심성스러운 행동에는 더욱 짙게 정옥이의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그의 태도로 보아 그런 것도 같지 않다. 혹시 이것은 누구의 짓도 아니고 죽은 은희 자신이 나로 하여금 자기를 한시바삐 잊어버리고 정상적인 일상생활로 들어가라고 자각을 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마루 구석으로 물러간 거나 아닐까? 흥!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천만의 말이다.
승재는 머리를 저었다. 골이 팬다.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
정옥이가 아침상을 들여왔다. 그의 눈치를 살피었다. 잔잔한 물처럼 구김살 하나 없다. 승재는 몇 술 아침을 뜨고 나서 자리에 누었다.
『오늘은 아무 생각 마시고 푹 쉬세요. 잘못하다가는 큰 병환 나시겠어요.』
정옥은 상을 물리며 조용히 이렇게 말하였다. 승재는 덤덤한 눈으로 정옥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말은 너무도 많이 들어왔다. 은희가 죽은 후로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가 승재를 일종의 환자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시기는 커녕 승재의 죽은 은희에 대한 정은 날로 더욱 사무쳐 가기만했다. 대체 은희는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도 신변 가까이 있던 사람이 이렇게도 가뭇 같이 사라질 수가 있을까? 이 가혹하고 준엄한 현실을 승재는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주의 뜻에 맡겨 드려야지요. 우리가 아는게 무엇이 있겠어요』
정옥에게서는 이런 말도들은 기억이 난다. 주의 뜻 그 주의 뜻이란 또 무엇인가? 나의 육신의 한 부분과도 같은 사람을 아무런 까닭도 없이 삽시간에 앗아가는 것이 주의 뜻이란 말인가? 물론 이런 일이 사람의 힘을 초월한 어떤 미지의 큰힘과 계획에 의하여 이루워 진다는 것은 승재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은희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승재는 은희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은희의 강권으로 불과 보름만에 승재는 영세하여 벼락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에 승재는 결코 열심한 신자는 아니었다. 그래도 성당에 다니기를 아주 집어치우지 않은 것은 오직 은희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물론 종교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냉엄한 일상생활에 비길때 그것은 허공에 뜬 무지개와 같았다.
우리의 거치른 생활을 감싸주는 오색영롱한 네온사인에 불과하다. 승재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골돌하는 은희의 태도를 한편으로 우습고 귀엽게 보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승재는 커다란 고개 앞에 다달았다. 은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승재는 그 무지개와 같은 종교라는 존재와 단판씨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체 은희가 어디로 갔을까? 그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승재는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어도 흩으러지는 생각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은희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갔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별안간 마루 끝에서 쓰러져 졸도했다. 그는 얼굴이 깨어지고 코피를 쏟았다. 그런 후에 백방으로 손을 썼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이 열흘도 못되어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은희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누가 눈 깜짝할 동안에 승재에게서 가로채어간 것이었다. 원통하였다. 원망스러웠다. 울분이 복받쳤다. 그러나 아무데도 항의할 곳은 없고 은희의 존재가 가뭇 같이 사라진 것만은 지워버릴 수 없는 사실대로 남아 떨어졌다.
승재는 낮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는다. 골이 뻐개지는 듯이 패고 팔과 등이 결리었다.
『아빠자?』
머리맡에 가벼운 입김이 느껴지고 끝에 놈이 들여다 보았다. 어디가서 놀다가 집생각이나서 들어온 모양이다. 에미가 죽은 후로는 아비를 더욱 안타깝게 따른다.
『어디갔다 왔니?』
승재는 어린 아들의 손을 쥐었다. 새까맣게 때가 묻은 조그만 손이었다.
『놀았어. 그런데 아빠 어디아파?』
『아니다. 괜찮다. 몸살이니까 내일이면 났는다』
아들은 어린 마음에도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놀라움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눈치이었다.
『애 그런데 참 안방에 걸린 엄마사진을 누가 마루로 옮겨 놓았는지 아느냐?』
『응? 사진? 저기 그대로 걸려 있네.』
아들은 안방벽에 걸린 에미의 사진을 대견스러운 듯이 바라 보았다.
『그건 내가 도로 바꾸어 놓은 거다. 글쎄 그 사진을 누가 마루 구석 벽에 걸린 사진틀에다가 옮겨놓지 않았겠니.』
『그건 시골 고모가 그렇게 하셨어.』
『뭐라구?』
승재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고모가 왜 그런 짓을…』
『몰라. 이 놈의 사진을 꼴도 보기 싫다고 하면서 마루로 가지고 나갔어』
『흥! 그래 그 때 순녀네 엄마도 곁에 있었니?』
『아니 그 때는 고모하고 나하고 밖에 없었어. 참 언니도 있었다.』
『흥!』
『아빠 나 놀다 올게』
아들은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승재는 기가 막히었다. 누님의 짓이었구나. 그렇게 듣고 나니 그럴 법도 한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누님 생각을 하지 않았을가. 미안하다. 미안한 생각이 일어나며 승재의 마음에는 갑자기 정옥이의 존재가 크게 확대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