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1년전 슬로바키아 작가 라디술라·나츠고가 「권리」란 책을 발표했을 때 아무도 나츠고가 이 책에서 비판하는 「권리」 즉 공산주의의 독재자들이 오래 정권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아니했다. 이제 체코슬로바키아의 노보트니 대통령은 사표를 냈다.
나츠고는 이겼다. 새로 권리를 잡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 사상으로 정치를 한 것이지만 20년동안 즉 1948년부 더 해봤던 독재적 방법으로는 안될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한민족이 아니고 여러 민족들이 모인 나라이기 때문에 독재정치를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체코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은 약9백만명이며 슬로바키아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이 3백만명이고 독일 사람들이 16만명, 폴란드 사람들이 8만명, 헝가리사람들이 약40만명이나 된다. 공산독재에 항거하고 민주주의적 정치를 부르짖은 민족은 슬로바키아 민족이며 나쵸도 슬로바키아 사람이고 새 대통령 후보자도 슬로바키아 사람이다. 단일민족이 아닌 체코국민에게 독재정치가 영속할 수 없고 한민족을 다른 민족이 오랫동안 독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노보트니 대통령은 체코사람이었다. 가톨릭교회를 새로운 자유분위기 속에서 다시 살리게 될 것을 희망하겠지만 확실하지 않다. 감옥에 있던 5백명의 신부들과 12명의 주교들은 다시 자유를 얻어서 교회를 지도하게 되더라도 오랜 억압을 견딘 교회전체의 힘은 아직 약하기 때문에 비종교적인 사상과 공산주의사상을 견제할 수 있겠는 지는 의심스럽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체코슬로바키아 교회는 20년동안 지도자 없는 교회였다. 1948년 9백만 가톨릭신자들에 신부수는 6,900이었지 만 1965년 신부 수는 2,500명밖에 없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다른 남아있는 4,400명 신부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감옥에 가지 않았으면(감옥이나 강제수용소에 있는 신부들이 1958년 현재 약3,000명이었다) 노동자가 되었다. 많은 신부들이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도 노동자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12교구의 주교들 거의가 투옥되었거나 교구를 지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주교 한분만이 실지 교구장으로서 남아 있었다.
②이렇게 성직자들을 투옥 혹은 연금생활 속에 억류시킨 정부는 괴뢰(정부가 임명한) 거짓 신부들이 온 교회를 공산주의 사상 속에서 지도하고 있었고 아직도 이렇게 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과 협조하겠다고 한 신부들이 1949년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성직자 평화위원회」를 설립하였다. 회장은 오늘까지 그 직에 있는 요셉플로이하(PLOJHAR) 신부이다. 플로이하 신부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보사부 장관인데 1949년에 벌써 파문 받았던 신부이다. 이 신부위원회는 문교부에 속한 종교국과 협조함으로써 온 교회를 공산주의 사상 속에서 지도하기 위해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적극적인 뒷받침을 주고 있다. 그리고 종교국은 보통으로 이 신부위원회를 통해서 온 교회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 신부들은 자기주교들을 완전히 무시해야 한다.
각주교관과 각본당내에 종교국에 의해 임명된 「총무」가 일하고 있는데 이 총무는 주교나 신부가 하는 모든 언동을 조사하고 종교국에 보고한다. 종교국은 「평화의 성직자 위원회」를 이용하고 협조하지 않는 신부들과 주교들을 신자들과 멀리하도록 하고 있다.
③사이비 「가톨릭 악숀」 조직을 1948년에 설립해서 이 조직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공산주의사상을 주입시켜 단체를 양성시키고 있다. 이 조직이 신부위원회와 같이 성공하고 있지 않아도 교회에 대한 충분한 장애물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직으로 하여금 독립교회를 설립케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사건이 벌써 한번 있었다. 신부들 140명이 여러 신자들과 함께 1920년 교황에게 세가지 건의를 하였었다. 즉 신부들의 독신제를 없애고 「라띤」말 대신으로 체코슬로바키아 말을 미사때 사용하며 평신자들의 교구운영참여권요청이었다. 교황이 청했던 세가지를 거절했을때 140명 신부들이 교회를 떠나서 독립 「체코슬로바키아 교회」를 세웠다. 오늘날 이 교회의 신자 수가 약1백만명 된다. 이러한 사건 때문에 교회는 전체적으로 더욱 약해졌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1948년에 교회가 정신적으로 너무 약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더욱 쉽게 권리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오늘의 체코슬로바키아의 가톨릭 교회는 공산주의 정부 앞에서 힘없는 교회이다. 일반신자들 중 수십만명이 교회에서 떠났다. 많은 신자들이 냉담했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주일미사때 어떤 본당에서 신자들 20명 이상이 참례하고 있지 않다. 남아있는 신부들이 성당 안에서나 밖에서나 학생들에게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돼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무신론사상 안에서 자라고 있다. 부모들만이 자녀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줄 수 있는데 부모들 신심이 깊지 못하니까 자녀들에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래도 교회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 너무나 약한 교회이지만 주교와 신부들의 희생과 피로 말미암아 체코슬로바키아 교회가 현대의 자유주의 분위기 속에서 새로 부활할 것을 우리들은 희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