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 精神具現(정신구현)을 위한 刷新(쇄신)의 道程(도정) ⑤
韓國文化(한국문화)·風俗(풍속) 積極(적극) 導入(도입)을
◇平信者(평신자)의 改革案(개혁안) 提議(제의)「不敬(불경)」舊弊(구폐)◇
典禮(전례) 生活化(생활화) 지름길 現行(현행) 禮節(예절) 모두 外來品(외래품)-어려운 일
典禮(전례)와 韓國文化(한국문화)
①한국 어떤 시골 본당 신부인 한 친구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혼배 주례자가 되어 새 「가톨릭예식서」에 씌여 있는(S·56)대로 신랑 신부에게서 가서 『서로 바른손을 잡고 나를 따라 맹세 하십시오』했더니 갑자기 모든 회중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마을에서는 남녀가 이렇게 손을 잡는 것은 외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다.
왜 가톨릭예식서의 발행자는 악수하라는 대목에 「절」을 하라고 하지 않았는지? 온 한국에서 「절」이란 것은 혼인의 표로 널리 알려져 있다. C·C·K 「가톨릭예식서」의 발행자가 전례헌장 제77조를 미리 읽어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거기에 바로 혼배예식에 대해서 『지역 교회당국은 그 지방 민족에게 알맞는 고유한 예식을 작성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주례사제가 신랑신부의 동의를 묻고 답을 받아야한다는 법규는 준수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②學理的으로는 전례가 다른 文化에 적응되어야 한다는 것은 쉽지만 그 실천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한국문화는 시대에 따라 대단히 심하게 변천한다.
문화잡지를 볼라치면지 성인들이 얼마나 서구화되어 갈수 있는지, 또 산업장이 필수적으로 西歐文化를 동반하지 않아도 좋다는데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문화의 어떤 局面이 전례에 적용되어야 하는지? 젊은이들이 베토벤과 미국 「재즈」음악을 좋아하나 노인들은 아직 국악을 좋아한다. 저명한 전례學者 요셉·융그만은 이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었다.
『비행기를 쓸려면 항상 조금 앞을 보고 쏘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탄알이 비행기에 닿기전에 비행기는 미리 앞질러 날아가 버리고 만다』 이와 꼭 마찬가지로 전례의 적응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어떤 부면에서 문화가 발전되는지 앞을 내다보고 거기에 따라 적응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절대로 지난날의 형식에 적응시킬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고 항상 현재나 미래에 적응시켜야할 것이다. 이는 문화를 어느 정도 잘 이해하고 문화발전의 진로를 조금이라도 내다볼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③나는 지금 상술한 원리에 의거해서 전례의 및 부분과 한국문화에의 그 적응을 논의코자 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미사에 대해서 말해보자. 미사를 제사라고 일컫는다. 이는 이미 적응을 위한 하나의 例이다. 왜냐하면 제사라고하면 원래 유교예식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적응은 아직 반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가 교리시간에 고등학생에게 『제사가 무엇을 뜻 하느냐?』고 묻는다면 『조상을 공경하는 예식』이라는 대답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제사가 조상을 위한 예식이라면 어떻게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고 또 이 제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고 묻는다면 고등학생들은 더 이상 답변을 못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시조로서의 천주를, 그리고 십자가 나무에서 자라고 거두어들인 인류의 가장 중요한 결실로서의 그리스도께 대한 어떤 제사 신학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사에 있어서 인류의 가장 중요한 결실이 인류의 시조에 바쳐졌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미사도 제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을 좀더 진전시킨다면 아직까지 서구신학에서는 명확히 발전시키지 못한 따라서 신학의 새롭고도 한국특유의 요소를 찾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성당건축에 있어서도 한국적인 전형에 따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거듭 말했거니와 미사는 같이 모여서하는 성찬이기도 하다.
따라서 연회장 같은 교회건축양식도 용인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한국에서 연회장 양식처럼 지은 성당건물은 대구에 있는 내당동성당 단 하나 밖에 본적이 없다.
성당장식도 마찬가지다. 한국현대예술인의 작품을 거의 볼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 대신 불쾌하기 짝이없는 이태리식의 저속한 작품이 판을 치고 있는 형편이다.
나는 서울에서 열리는는 대한국 예술과 서예전시회에 가본적이 있지만 거기에 한사람의 신부나 신학생의 관람자도 볼 수가 없었다. 이것은 바로 성직자들의 자기나라 예술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
祭衣에 대해서도 서구에서만 理解될 수 있는 것은 어떤 「심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양, 牧者, 빨마 비둘기 등등은 한국 사람들을 위해 씌여지지 않는 「심볼」이다. 그 반대로 용범 공작 장미 제비 등등은 잘 이해된다.
동양예술에는 특히 장식으로 글씨가 잘 이용된다.
그러나 나는 아직껏 한글이 씌여진 단 하나의 祭衣도 본적이 없다. 한글은 아주 훌륭한 발견이고 이것은 쉽사리 예술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왜 그것을 아직까지 이용하지 않았는지? 제의의 제단모양에 대해서도 왕궁에서 다시 끄집어낸 구식의상의 모양은 아무런 뜻이 없으니 현대모양으로 적용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로마식 제의와 두루마기의 절충양식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사경문이나 예절에도 몇 가지 적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데 『보라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로다.』 이미 말 한대로 양이란 씌여지지 않는 「심볼」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은 높은 사람의 면전에 고개를 들고 보지도 않으며 오히려 머리를 숙인다. 이와 비슷한 문제들이 다른 성사에 있어서도 많이 있지만 여기서 나는 짧게 몇가지만 비추었을 뿐이다.
전례는 일반 한국 사람이 이미 어떤 外來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되어야 겠다. 점차적으로 특히 평신자에게 전례가 어떻게 바꾸어져야 하는가 하는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 기탄없는 의견들이 나와야 한다. 앞으로 평신자가 거기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한다고 해서 교회에 대해서 아무런 不敬이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오히려 공의회가 그것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의 과제는 하느님의 백성으로부터 오는 고무를 참작해서 공의회의 말씀대로 전례를 개혁해나가는 것이다. 『성사집전, 준성사, 행렬, 전례용어, 성음악과 성미술의 적응을 규정하는 권한은 지역교회당국이 가진다』(제39조)
白쁠라치도(神博·왜관보좌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