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神)에 대한 문제다. 신에 대한 재래식의 철학적 논증은 현대인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인생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이미 어떤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부켄발트」와 「히로시마」의 참상(慘狀)이나 도시의 폭동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현대무신론은 위기에 처한 세대를 대변하는 고통의 울부짖음이다. 우리는 이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신을 다시 한번 찾아볼 필요가 있다.
사무엘·베케트는 「고도트를 기다리며」라는 그의 연극을 통해 오늘의 종교적 좌절감(挫折感)을 거울에 비추듯 여실히 묘사해주고 있다. -주인공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로겐은 「고도트」라고만 알려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인물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아무런 동작도 없이 수다스런 대사(臺詞)만 늘어놓는 가운데 연극 모두 끝나버린다.
그들은 그들이 무엇 때문에 「고도트」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낼려고 애를 쓴다. 그것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미래 전체가 오직 「고도트」와의 만남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이 전부다. 그 밖의 것은 모두 어떤 희미하고 망각된 과거속에 파묻혀 있다.
피로에 지치고 회의(懷疑)와 우유부단(優柔不斷)에 사로잡힌 그들은 「고도트」가 나타나면 적어도 그들에게 「기다리는 의미」를 설명해 주리라는 한가닥 희망에 매달려 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고 있는 것이 더욱 현명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트」는 결코 오질 않는다. 막이 내릴때에 스트로겐과 블라디미르는 어둡고 텅빈 무대위에 외로히 남아 있다. 이와 같이 해서 베케이트는 부재중(不在中)인 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다. 신이 존재한 적은 있었다. 신에 대한 신앙이 사회에 큰힘을 미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 이미 옛일이다. 그 후에 많은 사건이 생겼다. 인간도 세계도 변하였다. 이리하여 신은 더 이상 변해버린 새로운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
신이 부재한다는 말은 신이 공휴일에 잠시 어디론가 출타했다가 곧 돌아오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차라리 그 말은 신이 우주전체에서 동떨어져 평안하였기 때문에 부재중이란 말이다. 신은 되돌아올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미 신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인간은 별안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베케트는 결론한다. 만사는 비극적인듯 하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 새로 고치기엔 때가 너무 늦었다. 우리는 오직 기다릴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부재하는 신」이란 주제는 현대문학에 있어서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세기전에 이미 프리드리히·니체가 처음으로 한 말이다. 이 폭발적인 독일 철학자는 그의 저서 「THE GAY SCI ENCE」 중의 짧은 에피소드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그 자신을 신시대의 예언자 역으로 등장시킨 일이 있다.
▲광인(狂人)-『여러분은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저자로 뛰어가 「나는 신을 찾노라! 나는 신을 찾노라!」하며 쉬지 않고 외치던 어떤 미치광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때마침 그곳에는 신을 믿지않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으므로 그는 더욱 웃음을 터뜨리게 하였다.
『아니, 그이(神)가 어린애같이 길을 잃어버린 것인가?』하는 이도 있었다. 『그이가 어디로 숨어 버렸는가?』 『그이는 우리를 무서워하는가?』 『아니 그이가 어디로 여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멀리 이민(移民)을 떠났는가?』하고 모두들 소리치며 웃었다.
이때 광인은 그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들을 꿰뚫어 보면서 『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내가 당신들에게 가르쳐주겠오. 우리-당신들과 나-가 바로 그를 죽였오. 우리는 모두 그를 죽인자 들이오. 신은 죽었오. 정녕 죽고 말았오. 바로 우리가 죽인 것이오… 그러니 이젠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 그의 값어치를 하는 것이 어떻소. 이보다 더 위대한 공적을 세운일은 아직 한번도 없었오.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우리의 후예(後裔)는 누구나 바로 이 공적때문에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 보다 더 위대한 역사의 일역(一役)을 담당하게 될 것이오』
여기서 광인은 말을 중단하고 다시 청중들을 둘러보았다. 청중들도 역시 침묵을 지킨채 놀란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등불을 땅에다 팽개쳐 버렸다. 등은 깨어지고 불도 꺼졌다. 그는 이렇게 중얼 얼거무렸다. 『내가 너무 일찍 왔군. 시간이 채 이르지도 않았는데… 이 무서운 사건은 지금도 종잡을 수 없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고 사람들의 귀엔 아직 이 사건이 먹혀들지 않고 있어.」
번개와 천동에도 때가 있고 별도 빛을 낼 때가 따로 있지. 만사는 모두 제 때가 있으니 일이 이룩된 후에라도 사람들의 눈에 띄이고 귀에 들릴 때까지는 시기를 요하는 법이야. 그들이 이런 일을 하기엔 아직 멀었어. 저 멀리있는 별들이 까마득히 멀듯- 그러나 그들은 이미 스스로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