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윤득한(마리아=37歳) 여사의 숨은 이야기가 이제 햇빛을 보게되어 화제에 오르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 윤 여사는 15년전 동경新宿區富久町 7番地 三幸物産株式會社 사장 李憲成(요셉=49歲)씨와 결혼하여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고 있는 독실한 가톨릭신자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66년 3월 윤 여사는 일본 사회평론가 「아끼야마·지에꼬」 여사와 함께 내한, 한국 빈촌을 시찰하고 돌아갔다.
일본에 돌아간 「아끼야마」 여사는 신문잡지에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윤 여사의 「의류모집 운동」을 도와달라고 호소 윤 여사는 東洋運輸株式會社 사장「오쯔하다」(乙旗), 전무 오누끼(小貫)씨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그해 10월부터 수집운동을 벌였다.
67년 5월까지 8개월 동안 모집된 옷은 대개 4톤 정도였는데 수속관계로 그후 7개월 동안 창고에 쌓여 있었다.
창고비 관계로 부인들을 동원하여 제일 좋은 것으로만 골라서 2톤으로 양을 줄여 67년 12월 수속이 끝날때까지 옷을 또 다시 창고에 넣어 둘수 밖에 없었고…
한국가톨릭구제회(NCWC) 총 책임자 안제오르지오 몬시뇰은 이것을 인계받아 파월장병 유가족 및 폐결핵환자와 나병환자 가족 약2백세대에게 나누어 주었고 아직 3분지1 정도가 NCWC에 남아 있는데 계속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줄 예정이다.
이에 앞서 윤 여사는 67년 3월 의류 8상자를 자비를 들여가면서 소포로 한국에 보냈는데 보내온 웃들은 샬트르·바오로수녀원에서 경영하는 수원교외의 왕립국민학교 가난한 아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지난 4월7일 일본에서 열리게 될 한국공예품(특히 「악세서리」) 개인전시회 준비차 내한했던 윤 여사는 3월 16일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현재도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류모집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하였다. 서울시청 공보실에서는 이러한 윤 여사의 미거(美擧)를 공보부에 보고하여 공예품전시회에서 얻는 문화적 공적을 표창하리라 한다.
윤 여사는 일본 각종 여성잡지나 신문에 한국예술품 및 한국요리와 꽃꽂이에 대한 글을 자주 실림으로써 한국의 고유한문화 선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부군 이요셉 사장도 윤 여사에 못지않게 애국심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 구제회에 근무하고 있는 윤 여사의 동생 윤덕한(마리아·루치아) 여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형부와 언니는 자녀들에게 너무 지나칠 정도로 「한국」 「한국」 합니다.
<너희들은 한국 사람이다. 한국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일본 아이들과 놀면서도 <애들아 나는 한국 사람이다>고 자랑스럽게 우쭐대곤 한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는 꼭 한국말을 쓰도록 하고 밖에 나가서도 한국 사람에겐 꼭 한국말만한대요』
외국물만 조금 먹으면 외국사람 행세를 하려들고, 외국 국적을 가지게 되면 큰 벼슬이나 한 것처럼 으쓱해 하는 알량(?)한 일부 한국인들은 이런 정신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