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現代文學) 2월호에 강용준(姜龍俊)씨의 단편 <사심판>(私審判)이 실려 있었다.
『참 망칙하게 되었구나. 찟기고 할퀸 얼굴은 숫재 광대를 그려 넣은 아프리카 토인들의 그것이고 이렇게 높은 보좌 위에서 천주님은 숱이 많은 은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려다보시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천주의 이름을 일컬어 희화적(戱畵的) 소설을 꾸미는 것 자체가 온당치 못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한편의 소설 <사심판>은 교회나 천주에 대하여 과히 거치른 언사를 노출시키지도 않으면서 오늘이 사회의 광범한 저변지대를 천주 대전에 직정적(直情的)으로 고해바치는 유우머러스한 자극을 펼치고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 「나」는 청춘의 황금기 거의 전부를 전쟁의 들판에 바치고 나서 막상 생활전선에 돌아왔을 때에는 자신의 무기력만을 자각하게 된 이 땅의 한 청년상이다.
그는 한날 금주를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친구의 강권에 못이겨 달갑지 않은 생각으로 술집에 갔다가 폭력배들에게 얻어맞아 천국행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천주 대전의 사심판에 회부된 것이었다.
이 청년은 어떻게 해서든지 천주의 동점을 사려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사회구석구석을 뒤집어서 불평을 늘어놓기 바쁘다. 이북 고향에서 이 청년에게 영세를 준 일이 있는 바오로 신부는 이 심판대에 동석해 서서 안절부절이다.
『그래 너는 왜 그 사람이 못났느냐. 너의 그 과장하는 버릇과 자학벽은 저세상에서도 유명하더니 아직도 버리질 못했구나?』 바오로 신부는 말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기 까지 한다.
그러나 청년은 자기가 음주와 불평에 놀아나게 된 경위를 말한다. 청년의 집 옆집이 어떤 장군의 집인데 그 집 식모는 바나나껍질을 꼭 컴컴하고 불결한 이 청년네 집 앞에 내다버린다. 허기와 임신의 입덧에 시달린 청년의 아내는 어느 비오는 날 그 바나나 껍질을 줏어다가 부엌에서 아이들 몰래 먹고 있었다. 마침 날품팔이 노동판에서 비 때문에 집에 돌아온 청년이 이 꼴을 발견했다. 남편이 욕을 하자 아내는 어린애처럼 울어버렸다. 남편은 비속으로 다시 뛰처나와 소주를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듣고 있던 천주님도 몇 번인가 눈을 썸벅이더니 비단수건으로 눈물을 훔친다. 또 곱살하게 생긴 천사가 두꺼운 책을 펴들고 청년의 선행(善行)쪽을 읽어 내려갈 때면 간간이 죄쪽의 저울추가 공중으로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천주의 심판은 준엄하다. 『뭐 더 들은 것 없다. 저자의 죄량과 구분을 따라 그에 합당한 지옥으로 어서 보내거라.』 이때에 바오로 신부가 우물 쭈물 수단을 부린다. 『지옥의 루치훼로 대악마로서도 이 죄인을 시기하여 말썽을 일으킬까 걱정이옵니다.』
이리하여 이 청년은 결국 땅 위에 환생한다. 시종 유우머러스한 희화속에 미천한 한 시민의 바보스러운 착함이 형식적 계율의 그물을 뚫고 훨훨날아다니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청년의 환생 후의 문제 등 인간의 종국적인 구제원리에 대한 조리에 있어서는 약한 점이 있으나, 부담없 이 흥미롭게 쫓아 읽게 되는 내용과 형식의 소설이었다.
시(詩)로서는 「경향잡지」 2월호에 실린 이석현씨의 <제단>과 「가톨릭청년」 3월호 「가청시단」에 발표된 김설영의 <눈 내리는 밤에>가 주목을 끌었다.
<제단>은 그 머리에 아예 「성시」라고 붙여 놓았는데 과연 성시(聖時) 또는 종교시로서 이 작품은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시인이 자기 신앙을 원력(原力)으로 삼아 시를 쓸 때에 그것이 반드시 성시 또는 종교시의 형식적 테두리 속에 고정되어야할 필요만은 없을 것 같다. 많은 「이미저리」의 원숙이 포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단>이란 제하(題下)에 「술과 떡」 「제물」 「향유」 등의 어휘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이 시의 폭을 퍽 용색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시인은 신에 대한 제단을 우리의 신선하고 풍요한 자연이나 또는 고난의 시정(市井) 광장으로 잡는 것이 더 합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눈 내리는 밤에>는 소박한 서정적 공간에 인간형제들에로 향하는 티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밤에 한 나그네를 맞으면
나의 가난한 식탁에 꽃을 놓고
오랜 포도주를 꺼내 대접하리니
어머니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나의 방랑하는 친구들을
나의 외로운 분신들을.』
이렇게 하여 작자는 「나자렛 집의 불빛 흐르는 창」과 『밤새껏 등을 달아두고 올리는 긴 기도』에로 종장(終章)을 끌고 간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흠은 있지만 이 시의 발상은 너무도 원만하고 자연스러워 퍽 눈에 익은 듯한 친근감을 준다. 이러한 시들의 발전적 정진이 기대된다.
具仲書(文學評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