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7) <第一話(제1화)> 나를 만나보시려면 ⑦
발행일1968-03-31 [제612호, 4면]
정옥은 죽은 아내 은희와 절친한 사이이었다. 어떻게도 자별한지 주일에 성당에서 만나면 으례 집으로 데리고 와서 점심을 대접하고 서로 소곤소곤 몇시간씩 이야기하는 것을 승재는 늘 보아왔다. 그리고 은희는 서로 비슷한 나이건만 정옥에게
『대모님 대모님』
하고 또박또박 존대를 하였다. 그러다가 은희가 갑자기 병이 들었다. 병이라고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돌발적인 발병이었다. 낮에 장독대에 올라가서 일을 하다가 별안간
『아아,』
하고 쓰러져 졸도한 것이다. 은희는 튼튼한 몸은 아니었지마는 그렇다고 섬섬약질도 아니었다. 땀을 잘 흘리고 조금만 높은데를 오르려면 숨이 차했다.
『아이 숨차.]
별로 높지 않은데도 오르려면 이렇게 말하며 멋적은 듯이 웃었다. 그럴때 얼굴을 보면 이마와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손수건만은 꼭 가지고 다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장독대에서 쓰러져 졸도를 한 것이다. 장독대 뚜껑에 행주질을 치다가 숨이 가빠서 잠시 쉬며 하늘을 쳐다보는데 눈부신 태양이 갑자기 뚝 떨어져 덤벼들며 그만 정신을 잃었노라고 그는 병석에서 힘없는 목소리로 설명하였다.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도 못되어서 은희는 세상을 떠났다. 심장병이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한 귀중한 생명이 종언을 고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은희를 생활의 거의 전부로 생각하는 승재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 정옥은 달려와서 아내의 병석에 내리붙어 있었다.
그는 이미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된 후이었다. 남편에게서 받은 충격 때문에 은희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매우 불길한 예감을 가졌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승재보다도 앞장을 서서 백방으로 서두르다가 죽을 무렵에는 자기가 달려가서 성당에서 신부를 청해와서 은희에게 종부를 주었다. 그 때는 이미 의식이 희미해 있었다. 얼굴이 해쓱하고 동자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은희의 장례가 끝난 후에도 정옥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남아서 은희가 하던 일을 그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에서는 그가 이미 후취로 들어온 것이라고 쑤군거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집안 살림살이이며, 아이들을 거두는 일이며, 심지어는 승재를 받드는 일까지 그는 더 할 수 없는 정성을 기울였다. 이런 태도가 승재에게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승재는 마치 그가 귀중한 은희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려는 훼방군이라도 되는 듯이 마음속으로 은근히 마땅치 않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들어내어 놓고는 아니지마는 은근히 미워하고 핀잔을 준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정정은 도무지 탓하지를 않는다. 보통사람 같으면 벌써 뿌르퉁해 가지고 욕이라도 퍼부으며 달아나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정옥은 하루가 여일했다. 귀먹은 체 눈어둔 체 거슬리는 일은 도무지 댓구를 하지 않았다. 그저 정성껏 자기가 한일만 꾸준히 할 뿐이었다. 그의 친정은 지금 어느 시골 광산마을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이 그렇게 간구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거기만 가면 재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생활에는 근심이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친정에서는 편지가 오고 나중에는 사람까지 와서 돌아가기를 종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두 거절하였다. 그대로 승재네 집에 남아서 궂은일에 열중하였다. 그러니까 승재의 은근한 홀대는 정옥의 지나 친 까닭 모를 정성에 원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집안 형편으로 보아 해롭지 않은 일이다. 고맙게 생각하고 묵인은 하지마는 승재는 정옥을 대할 때마다 불쾌한 마음이 솟구쳤다. 더욱이나 그가 죽은 아내의 흉내를 내는 행동을 할때에는 승재는 그 이상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은희가 죽은 것은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일이겠지마는 승재의 마음에서 하루 빨리 은희의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서두르는 것이 바로 정옥인 것처럼 승재는 느꼈던 것이다.
『김선생님, 잊어버리세요. 모두 주께서 하시는 일이니 우리는 거기 공손히 따르는 수밖에 없지요. 모두 한바탕 꿈으로 생각하시고 빨리 잊어버리세요. 그러구 아이들과 김선생님 자신이나 잘 돌보세요. 죽은 애엄마도 그걸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정옥은 벌써 기회있을 때마다 몇번이나 승재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뭣이라구요』
그럴때 마다 승재는 술취한 얼굴을 들어 정옥을 노려보았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니 그래 그 주께서는 무슨 할일이 없어서 하필이면 우리 은희를 그것도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뺏어 간단말이오.』
『그건 모르지오. 우리들 사람의 생각으로야 어떻게 주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읍니까. 그러니까 그저 우리는 주께서 하라시는 대로 할 뿐이지오. 그저 주의 뜻이 여기에 이루어지소서하고 그분께서 하시는 일이면 쓰던 달던 모두 반갑게 받아들이는 거지요.』
『듣기 싫어요. 그 위선! 그런 말은 성당에나 가서 하시오. 나는 종교가가 아니오. 그냥 평범한 사람이오. 그러니까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주의 뜻보다 더욱 귀중한 거요.』
『허지만 김선생님도 애엄마와 혼배하실때 주의 뜻에 복종하기를 맹세하시지 않으셨나요?』
『했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무정한 일을 할 줄은 모르고 맹세한 거요. 그러니까 나는 속은 셈이오. 사람이 죽는 것도 예사겠지마는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없어질 수가 어디 있오. 이건 죽은게 아니라 나한테서 계획적으로 빼앗아간 거요. 그렇지 않소?』
정옥은 그 이상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