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가톨릭청년」 「가톨릭소년」 등 교계잡지 4월호와 5월호에서 문예작품들을 찾아 읽었다. 창작으로서는 연재물과 번역물만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시만을 논의에 올릴 수 밖에 없겠다.
5월호 「가톨릭 청년」에 메끌라 수녀의 시 <해바라기의 넋>이 이었다. 「성모 취결례 미사때 쓰고 남은 황초불」을 영원한 주의 세계를 사모하여 도는 해바라기로 읊은 지용(芝溶) 시인도 있었으며, 무신앙의 세속 나름으로도 정대한 이상과 뜨거운 사랑을 추구하는 정신을 해바라기의 넋에 비유하는 일이 있다.
빛의 근원이며 천체의 중심인 태양에 오직 얼굴을 마주하고 도는 해바라기는 참 우주의 주이신 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신앙인에게 있어 특히 훌륭한 시의 제재(題材)가 된다.
태양을 향하여 자라고 태양을 향하여 죽어가는 드 맑은 넋을 지닌 해바라기
허허벌판에 한포기 해바라기로 자리지워진 운명은 신의 안배이기에 캐어 날 수 없지만 신의 영광을 위한 인간의 삶이 저 해바라기와 같이 열렬하기를 떼끌라 수녀는 이 시에서 노래했다.
또 작자는 때때로를 몰아치는 비바람과 땅속에서 뿌리를 좀먹는 벌레와도 싸우면서 해바라기가 언제까지나 태양을 향한 그 넋을 지니기를 노래했다.
상(想)의 연접(連接)면에 더 완숙이 있었더면 하는 욕심은 있지만 성직에 있는 분에 의해 빚어진 그 신심(信心)의 예술적 형상(形象)은 반가운 소득이다.
다음은 역시 「가톨릭 청년」 시단에 실린 金 사비나의 <고뇌의 기구>라는 시를 보자. 「가청시단」은 교우 독자들의 투고시로 꾸며진 난일 것이다. 사회문단에서도 기성(旣成)과 신진의 차별이 본질상 불가함을 논의하는 마당이다.
「가청 시단」에서도 수준 있는 작품을 발견하면 이를 거론하고 함께 기리는 일이 옳겠다.
시상(詩想)이 대체로 알찬 편임으로 전편을 여기에 인용한다.
주여!
누가 찢었느냐고 묻지마옵시고 찢기운 이 깃발을 깁게 해주옵소서 누가 때렸느냐고 묻지마옵시고 얼룩진 이 상처 낫게 해주옵소서
가도 가도 멀기만한 이 어둠 속에
주여!
한 성총의 불빛 켜주사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성혈 쏟은 당신 성상(聖傷) 밑에 쉬게 하옵소서.
찢기우고
피흘린 상처뿐이지만……
이 시에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휘의 구사에 있어서 「찢었느냐고」 「때렸느냐고」로, 「깁게 해주옵소서」 「낫게 해주옵소서」를 「깁게 하옵소서」 「낫게 하옵소서」로 고쳤으면 하는 점이다.
현대의 이른바 자유시에 있어서 엄격한 정형율(定型律)은 필요치 않지만, 역시 산문과는 다른 내재율(內在律)이 요구된다.
또 시는 아끼고 다듬어서 응집된 「이미지」의 언어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해서도 되도록 군껍질은 벗겨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점만 해결되는 이 「고뇌의 기구」는 한 편의 흠없는 시일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찢었느냐고 묻지 마옵시고 찢기운 이 깃발을 깁게 하옵소서』와 같은 귀절은 참신하고 힘이 있으며 현대의 광장에서 시련을 겪는 인간의 고뇌를 말하는 비장이 있다.
이 시가 지닌 시심은 다만 기구(祈求)로써 진실된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기구 다음에 오는 것은 오직 우리의 성실한 실천이다. 이 실천의 기혼(氣魂)까지를 시화하는 작업을 앞으로 우리는 감당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창작 단편도 앞으로는 교계 지면들에 꼭 실려지기를 빈다.
■ 編輯者 註=앞으로 本欄을 通해 敎會內 定期刊行물에 게재된 文藝作品의 月評을 싣겠읍니다. 이밖에도 일반사회 刊行物과 書冊에 대해서도 信仰에 관련된 作品이나 기타 問題作에 대한 詩評을 斯界의 人士에게 위촉 揭載합니다.
具仲書(文學評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