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자유) 渴求(갈구)하는 항가리 國民(국민)
受難(수난)의 象徵(상징) 민첸티
敎理敎授(교리교수)까지 秘密裡(비밀리)에
公議會(공의회) 開催(개최)소식 모르고
抑壓甚(억압심)해 「地下(지하) 敎會(교회) 活動(활동)」
공산국가에서 추기경이 될려면 적어도 몇년동안은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폴란드의 비전스키 추기경은 1951년부터 1956년까지 투옥됐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베란 추기경은 1949년부터 1965년까지 그리고 헝가리의 민첸티 추기경은 1949년부터 1956년까지 감옥에 갇혔다가 1956년부터 오늘날까지 「부다페스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연금생활을 하고 있다. 비진스키와 배란 추기경은 석방되어 자유를 다시 얻었지만 민첸티 추기경은 공산정부에 의해 석방되지 않고 방공의거때 반공투사들에 의해 구출된 것이다. 사실 헝가리 공산정부는 민첸티 추기경이 외국으로 나갔으면 하나 민첸티는 지금까지 거절했다.
민첸티 추기경은 헝가리에서 죽을때 까지 머물려고 한다. 민첸티 추기경은 1948년에 했던 말을 오늘까지 고수하고 있다. 즉 『나 천주와 교회와 조국을 위해서 끝까지 서 있겠다. 나그네 돼 고아와 같이 이 세계 안에서 혼자있는 우리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받은 나의 사명이다. 우리 민족의 괴로움과 비교해서 나 개인 운명은 중요하지 않다. 오늘까지 19년 동안 자유를 박탈당한 민첸티 추기경은 이제 항가리 교회의 자유의 「심볼」이 됐다.
오늘날 까지 헝가리 교회 안에서 민첸티 추기경과 같이 생각하고 공산주의 집권자들에 강력히 저항하는 신자들과 신부들은 많다. 이들은 지도신부 한명으로부터 처음에는 개인지도를 받다가 나중엔 피정도 하고 계속적인 강습회를 가지게 되었다. 강습회가 거듭되면서 조직적인 교회사상과 교회의 앞날을 위해 연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밀 단체들은 1950년 부터 시작해서 오늘 수많은 「그룹」들이 되었다. 그러나 지도신부들은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정부에서 모든 신부들(현재 약 3천6백명)을 계속적으로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발각되면 신부는 아주 다른 지방으로 이동 당하거나 쉽게 몇년동안의 감옥생활을 해야하는 것이라 비밀 평신자 단체들과 같이 비밀 학생교리 강습의 모임도 있다.
정부는 국민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법적으로 허락을 주었지만 여러가지 방법을 이용해서 학생들이 교리시간에 참석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한 비밀 교리선생을 두고 있다. 특히 수녀들이나 아무 다른 일을 못하는 신부들이 집집마다 가서 그 집의 아이들에게 개인 교리교육을 시킨다. 혹시 아이들이 밖에서 교리교육을 받고 있음을 누설시킬 염려가 있으면 아이들 대신으로 어머니에게 교리를 가르쳐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한다. 헝가리의 「비밀교회」의 신자들이 몇명이 되는지는 알수 없다.
공의회 이후 항가리 정부는 『바티깐」과 다시 외교관계를 수립하길 바라고 있다. 아뭏든 형식적으로는 교회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자들이(전체인구 7천4백60만중 3분의2가 가톨릭 신자임) 정부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정부의 교회감독권도 얼마만큼 시인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민첸티 추기경외에 다른 주교들은 「바티깐」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현체제하에서 교회를 지도하고 있다. 다른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와 같이 헝가리 안에서도 몇년전부터 자유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서 현재 정세아래서는 헝가리주교들의 태도를 이해해야 될 것이다. 헝가리 주교들 중 얼마는 이러한 태도가 아니면 교회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사정은 항가리 교회를 위해서 위험한 생각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거짓 「평화신부들」의 조직을 본받고 헝가리에서도 1949년에 「평화 신부회」가 조직되었으나 오늘날 완전 히 공산정부의 뜻대로 일하는 신부들은 불과 15명이며 보통 정부에 협조하는 신부들은 약100명 정도다. 이외의 신부들은 적극적으로 공산주의자들에게 협조를 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거짓 신부의 수가 많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반 신자들의 가장 어려운 사정은 「가톨리시즘」이나 교리를 많이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의 억압이 심하기 때문에 신자들 중 1%만이 가톨릭 출판물을 받을 수 있다. 오늘까지 수십만명 신자들은 「바티깐」 공의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신부들도 전례에 대한 것 외에 공의회에 대해서 별로 아무것도 알고 있지 않고 알지도 못하고 있다.
항가리 교회는 될수록 이웃의 자유국가 교회와 관계를 가질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간의 접촉이나 연락이 가까스로 소통되었기 때문에 헝가리 신부들과 평신자들의 힘이 견고해 질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생각이 아니다. (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