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꽃들 (3)
丙寅殉敎紀念(병인순교기념) 10萬圓(만원) 戱曲當選作(희곡당선작)
발행일1967-06-04 [제571호, 4면]
재성=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저희들이 잠깐 잘못 생각하였읍니다.
박노인=그만들 돌아가게.
재운=할아버지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앞으로 저희들이 명심해야할 말씀입니다. 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을 도탄에서 건저 평화를 누리고 잘 살라면 이러한 싸움은 없애야 될 것입니다.
박노인=그렇고 말고.
재운=백해무익한 이러한 싸움들이 집안을 망치고 나아가서는 나라를 방치고 백성이 못살게 되는 원인이 되니 서로가 좀 더 깊이 생각하여 대의를 위해서만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박노인=암! 그렇고 말고.
재운=집안이 평화하고 이웃들이 화목해야 나라가 태평할 것입니다. 모두가 화목만 한다면 당쟁도 세도 싸움도 없을것입니다.
박노인=도령, 뉘댁손인가? 대장부 다운 경륜과 기상이 출중하였오. 더욱 이치와 사리가 밝아 성년하면 훌륭한 인걸이 되겠오.
재운=과분한 말씀입니다. 배운바 부족하고 연소한 몸이 무얼 알겠읍니까?]
박노인=허허! 예의밝고 똑똑하군.
재룡=좋은 말씀 많이 들었읍니다.
재성=영감님 철없는 짓을 해서 죄송합니다.
박노인=자네들의 그 씩씩한 기상을 보니 이 늙은 마음도 위안이 되네.
재성=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읍니다.
인표=영감님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재룡=할아버지 그럼 이만 실례하겠읍니다. 재운아 가자.
재운=할아버지 안녕히 계십시요.
박노인=오냐 잘가거라
(서로 인사를 나누고 퇴장. 막)
■ 제2장 제일장
때 - 일막으로부터 수개월 후 오월
무대 - 한편에 오막집이 한채 있고 전면 방문 앞에 툇마루와 부엌문이 달려 있고 싸리를 밖으로는 정자나무 한그루. 뒷면에는 첩첩산. 막이 열리면 아녜스 혼자 마루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무엇인가 꿰매고 있다. 산에서는 뻐꾸기 소리.
아녜스=아! 언제나 박해가 끝나서 우리들도 저 새들처럼 자유로이 천주님을 노래할 수 있을까. 언니는 지금쯤 치명자의 화관을 쓰고 천당에서 마음껏 천주님과 성모님을 찬미하고 자유로이 노래도 부를 수 있겠지 아! 답답해(일거리를 놓고 콧노래로 성가를 부른다 이때 수동이와 갑석이 등장하며)
수동=갑석아 누가 있나 잘 살펴라.
갑석=글쎄 염려마셔요 아까 두 노인께서 아랫마을로 내려가시는 것을 보았다니까요.
수동=그거 정말이라면 아주 잘 되었다.
갑석=오늘 이씨 문중에 혼인잔치가 있으니 거기 갔음이 틀림없읍니다.
수동=그러나 잘 살펴보아라.
갑석=쉬! 새아씨 노래소리가 들립니다. 도련님 어떻습니까? 일전에 소인이 그 용모를 보고선 기절을 할뻔하였다니까요. 참으로 뛰어난 일색입니다.
아녜스=내 정신 좀 봐 누가 들으면 어쩔려고(노래를 그치고 밖의 동정을 살핀다)
수동=글쎄 나도 말은 많이 들었다마는 내 눈으로 한번 봐야하니까 어서 시작하거라.
갑석=도련님 성미도 습하시지 글쎄 저 노래소리를 들어보셨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꾀고리 노래 소리보다도 더 아름다웁고 처량하고 향기로웁고 또! 또! 그렇지 천상 선녀의 노래 소리보다도 고웁고 도련님 기가 막히지요?
수동=글쎄 나도 일생에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들어 보긴 처음이다만은…
갑석=도련님 모소리가 저렇게 아름다우면 얼굴도 마음씨도 고운법이랍니다. 세상에 인물이 뛰어나면 천하일색이라고 하지만 저 새아씨는 천상에서도 일색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날아갈듯이 사뿐 사뿐 것는 그몸 맵시며 샛별처럼 빛나는 눈동자와 함박꽃처럼 탐스런 그 얼굴 앵도같은 입술 한번보시면 기절을 하실 것입니다.
수동=남의 가슴을 요렇게 애태우지만 말고 어서 그 얼굴이나 좀 보자꾸나. 네 말을 들으니 내 가슴이 기름가마처럼 불타오르는구나.
갑석=글쎄 소인 말을 좀 들어보세요. 박노인 슬하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난데없는 딸이 생겼으니 하늘에서 떨어진 선녀라고 모두 말하고 있읍니다.
수동=네 잔소리에 내 가슴 다 탄다. 어서 들어가 불러오너라.
갑석=그럼 시작해 볼까요(울 안을 넘겨다보며) 도련님 이리 와서 보셔요(아녜스 깜짝 놀라 방으로 들어간다) 잘 보셨읍니까?
수동=음! 과연 일색이로다.
갑석=에헴! 여봐라 이리오너라
아녜스=…-
갑석=에헴! 이리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고 여쭈라신다.
아녜스=아무도 없다고 여쭈어라.
갑석=아무도 없는데 거 사람 소린 무엇이냐고 여쭈라신다.
아녜스=모두 마실 나가시고 아무도 없다고 여쭈어라.
갑석=아무도 없으면 거 말하는 양반 좀 뵙자고 여쭈어라.
아녜스=아녀자의 몸이라 나갈 수 없다고 여쭈어라.
갑석=아랫마을 김진사댁 도련님께서 긴히 전할 말씀이 계시다 하오니 아무도 없으면 아가씨에게 여쭙고 가겠노라 여쭈라신다.
아녜스=전할 말씀이 계시면 거기서 전하고 가시라고 여쭈어라.
갑석=도련님 고분 고분히는 안되겠읍니다.
수동=그럼 아까 짜인대로 시작하거라.
갑석=(둘이 싸리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에헴! 아가씨 실례합니다. 김진사댁 도련님께서 이렇게 행차하셨으니 나오셔서 한마디만 여쭙고 들어가사이다.
아녜스=…
수동=아가씨 저! 아가씨
갑석=일러 드린대로 시작해보셔요.
수동=(머리를 긁으며) 가슴이 너무타서 모두 잊어 버렸나 보다.
갑석=아이 참! 도련님두(귀속말로 수동에게 한참 속삭인다)
수동=그렇지 에! 이렇게 와서 뵈옵는 것이 예의는 아니오나 어두운 밤길에(책읽는 식으로 말을 더듬는다) 그 다음이 무엇이더라 옳거니 그래 별빛을 우러르는 도사의 불심으로(하인에게) 그다음이 무엇이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