迫害(박해)가 다진 유고의 信仰(신앙)
共産國家(공산국가)인데도 宗敎自由(종교자유)
언제나 꽃과 촛불이
國民(국민) 推仰(추앙)받는「스」卿(경) 무덤에
共産黨(공산당) 出版社(출판사)서 印刷(인쇄)하는 社會週刊誌(사회주간지) 4年(년)만에 20萬部(만부)
黨新聞(당신문)보다 많은 發行(발행) 部數(부수)
1965년 3월 4일 「로마」주재 유고슬라비아 대사 이보 바이보다는 「로마」의 티쎄랑 추기경과 유고슬라비아의 스테피나츠 추기경 후임으로 새로 임명된 세퍼 추기경을 「로마」대관저로 초대해서 신임축하파티를 열었다.
식사 전후 티쎄랑 추기경이 기도를 드릴때는 모두 일어섰으며 바이보다 대사도 겉으로는 같이 기도를 했다. 공산주의 국가대사가 천주교 주교를 위해 축하파티를 연 것은 이것이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티토 대통령이 1948년 러시아와 그때까지의 밀접한 관계를 끊어버리고 유고 자주노선을 선언하지 않았던 유고슬라비아 대사가 추기경을 위해 연 축하파티에서 나타낸 유고정부와 교회사이의 우호관계는 발전되지 아니했을 것이다.
오늘날 유고슬라비아 교회가 다소는 위험하고 제한된 자유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정도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 것은 오랫동안의 박해중 흔들리지 않고 꾿꾿한 정신으로 모든 고통을 이겨낸 보람이다.
유고슬라비아 전체인구 1천9백만중 41%는 동방교회신자이며(로마와 일치하지 않는) 32%가 가톨릭이고 12%가 이스람교신자, 1%가 프로테스탄트, 14%는 무종교인이다. 유고슬라비아 국민은 단일민족이 아니고 5개의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민족이 모인 국가이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같은 종교를 믿고 있지 않다.
가톨릭 신자들은 대부분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 민족에 속하며 소수의 신자가 신앙생활을 튼튼히 보존해 온 것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유고슬라비아교회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로부터 박해를 받다가 1945년에 공산주의 국가가된 후 1960년까지 계속 심한 박해를 받았다.
어떤 때는 수명의 주교와 신부들 5백명이 동시에 감옥살이를 했다. 그동안 사형을 받은 신부만도 수십명이나 된다. 그러나 주교나 신부 그리고 신자들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만은 가지고 있었다.
1960년에 스테피나츠 추기경이 죽었다. 공산주의자들은 1946년 스테피나츠 추기경을 16년의 징역형에 처하였다.
5년간 감옥생활을 한후 9년동안 자택에서 억류되어 살다가 1960년 서거했다. 스테피나츠 추기경의 시체는 「자그램」의 대성당 제단뒤에 안치되었다. 벌써 8년전부터 시체는 이곳에 보관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무덤 옆에 꼭 생화가 있으며 촛불이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무덤 앞에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스테피나츠 추기경의 정신이 신자들 마음속에 살고 있는 것을 말해준다.
스테피나츠 추기경의 서거로 심한 박해의 기간은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완전한 종교자유를 바랄 수는 없으나 현재의 유고슬라비아교회는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서 주어진 자유를 이용하고 있다. 또한 교회는 가난하다. 수십개의 새로운 성당을 지을 필요가 있어도 돈이 없기 때문에 성당을 짓지 못하고 있다.
교회수입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국민들이 모두 가난하기 때문에 신자들의 경제력도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교리책을 인쇄할 돈이 없기 때문에 신부들이 공의회 후 외국어교리책을 외국거주신자들을 통해서 구하여 이것을 번역하고 「프린트」하여 교우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스테피나츠 추기경의 후계자인 세퍼 추기경이 오지리 교회의 후원을 얻어 새로 「글라스 콘칠라」(공의회의 소리)란 가톨릭신문을 출판하기 시작하자 즉시 5만부가 팔렸다.
오늘날에는 「글라스 콘칠라」가 격주로 발간되며(16면) 유고슬라비아의 가장 큰 신문이 되었다. 교회에는 출판사가 없기 때문에 공산당 출판사에서 인쇄를 하고 있는데 공산당의 잡지, 신문은 현재 20만부를 판매하는 가톨릭의 「글라스·콘칠라」를 쫓아오지 못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 안에서 더욱이 경제적으로 가장 가난한 유고슬라비아의 교회가 4년내에 새로 출판을 시작한 가톨릭신문을 20만부까지 인쇄판매하게된 사실은 유고슬라비아신자들의 신앙정신을 입증하는 것이다. 다른 사정으로도 유고슬라비아신자들의 굳은 신앙을 엿볼 수 있다. 국민들이 가난으로 인해 해마다 수십만명의 남자들이 독일과 오지리로 가서 몇년동안 노동품팔이를 한다. 오지리 「원」에서 유고슬라비아 노동자들을 위해서 주일에 특별미사를 드리는 유고슬라비아신부들이 수명 있다. 앉을 자리는 물론 설자리조차 없이 성당을 메우는 미사참여자들은 20세부터 45세까지의 노동자인 남자들인 것이다.
이렇게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은 오직 박해의 결실인 것이다.
박해 속에서 굳은 신앙으로 부활한 유고슬라비아교회를 생각하면서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세퍼 추기경을 금년에 온 세계교회의 신앙교리성성장관으로 임명하셨다.
스테피나츠 추기경의 십자가는 세퍼 추기경의 승리가 된 셈이다. <끝> (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