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8) <第一話(제1화)> 나를 만나보시려면 ⑧
발행일1968-04-14 [제614호, 4면]
정옥의 지나친 정성에 대하여 승재의 누님은 확실히 날카로운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정옥이가 승재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그렇다고 정옥이가 전부터 승재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마는 지금에 와서는 사정이 모두 달라졌고, 만일 승재와 정옥이 결합한다며는 그것은 서로가 매우 손쉽게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만한 일이었다.
승재의 누님은 바로 이점에 착안하여 시골에서 올라올 때마다 승재를 졸라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점이 승재의 비위를 은근히 거슬리고 반발을 일으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일은 어떤 한계점에 다달았다. 승재는 아내의 사진을 바꿔친 것은 꼭 정옥이의 짓인 줄로 알았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기어이 끝장이라도 낼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 정옥이 사라진다며는 여러가지 불편한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편의만가지고 사람이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승재의 기세는 단번에 꺾여버리었다. 그것은 자기의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이제 가만이 생각하면 승재는 확실히 정옥에게 너무 지나친 일을 했다. 더우기나 그는 여자이고 호라비 집에 사는 젊은 과부가 아닌가. 이런 사람에게 승재는 두고 두고 마치 눈의 가시처럼 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놀라운 것은 승재가 정옥에게 취한 태도가 아니다.
그렇게 내리 거의 모욕에 가까운 대우를 했건만 정옥은 도무지 탄하지 않는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일가?
승재의 누님이 생각하듯이 승재 자신이 은근히 느꼈듯이 정옥은 이 집의 주부가 되려는 것일가? 그렇다면 정옥은 매우 어리석은 여자이다. 승재는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이 이미 확실하지 않은가. 그 숱하게 많이 해붙인 승재의 불손한 태도를 정옥은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일가? 아니다. 정옥은 그렇게 매혹한 여자가 아니다. 그의 태도는 정숙한 가운데 조리가 있고, 말은 언제나 엉뚱하고 색다른 데가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는 여인으로서 오히려 죽은 은희를 능가할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이 어찌하여 홀대와 모욕을 무릅쓰고 이웃의 뜬소문을 들은체만체 그저 승재와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일가?
승재는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정옥이라는 여인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먼저 시급히 해야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정옥에게 사과를 하는 일이다. 사실은 누님이 저지른 일을 정옥이가 한 것으로 오인하고 승재는 그에게 거침없이 모욕을 가한 것이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했다』
승재는 마루로 나왔다.
조심스럽게 건너방 앞으로 갔다.
『정옥씨 계십니까?』
잠잠하였다.
『순녀엄마 방에 안계신가요?』
『………』
여전히 조용하였다. 웬일일가? 옳지. 건너방에는 귀퉁이에 붙은 골방이 있었다. 그 방은 외져서 마루에서는 좀처럼 큰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는다. 그 방으로 들어가는 길은 뒤곁으로 따로이 나 있었다. 승재는 고무신을 꿰고 뒤곁으로 돌아갔다. 거기 바로 동쪽으로난 큰창문이 있고 유리창으로 방안이 들여다보인다.
『앗!』
순간 승재는 입이 딱 벌어졌다. 정옥이가 거기 있었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아서 두 손을 가슴에 합장을 하고 있었다. 마침 햇살이 얼굴에 비쳐서 표정까지 손에 잡을 듯이 보이었다. 그런데 승재를 놀라게 한 것은 그것뿐 만이 아니었다. 눈을 고요히 감은 그의 부드러운 얼굴은 어쩌면 죽은 은희와 그렇게도 꼭 같은가. 하마터면
『여보!』
하고 승재는 소리를 칠뻔했다.
『아름답다.』
승재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승재는 지금까지 정옥에게서 이런 모습을 본 일이 없었다. 정옥은 결코 미인은 아니었다. 그저 부얼부얼하게 수수한 한 평범한 여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도 아름다워 보일까? 아니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아름답다는 말로 형용을 하면 단번에 속되게 와르르 허물어질것 같은 그러한 아름다움이었다.
정옥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대로 눈을 지긋이 감고 꿇어앉아서 두 손을 합장을 한채 그린 듯이 있었다. 승재는 속으로 안되었다 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거기서 한발자국도 떠날 수가 없었다. 아니 욕심대로하면 언제까지든지 그대로 바라보고 있고 싶었다. 바라보면서 승재는 차근차근이 따져 보았다. 대체 어떻게 해서 정옥이가 이렇게도 덧보이는 것일가? 어찌하여 그가 갑자기 은희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마음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일가?
확실히 정옥은 이상한 여자이었다. 그는 두개의 얼굴을 가진 여인이 아니었던가. 하나는 그저 평범하고 수수한 주부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그렇게 귀하지 않다.
어느 가정을 가든지 으례 있을 자리에서 으레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는 또 한개의 모습은 그것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정옥이라는 여인은 확실히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가 일상생활을 의존하는 갈래와는 전혀 다른 어떤 갈래에 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 여자다.』
승재는 또 한번 이렇게 생각했다.
『엄마!』
갑자기 등뒤에서 가볍게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그것은 뜻밖에도 정옥의 딸 순녀이었다.
『아저씨 여기서 뭣해?』
『………』
『옳지. 알았다. 우리 엄마 기도하는 거 보고 있었구나.』
『쉿!』
승재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 손까락을 댔다.
『후후…. 엄마가 놀랄가 보아서? 우리 엄마는 저렇게 기도드리고 있으며 절대로 놀라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