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꽃들 (4)
丙寅殉敎紀念(병인순교기념) 10萬圓(만원) 戱曲當選作(희곡당선작)
발행일1967-06-11 [제572호, 4면]
갑석=아이 참! 도련님도(귓속말로 다시 속삭여 준다) 한떨기 어여뿐 꽃을 뵈옵고저 하는 것이 무슨 허물이야 되겠읍니까? 에… 에! 에!
갑석=(수동이를 밀치며 수동이 대신) 에 한떨기 어여뿐 꽃송이의 향내에 젖어 잠못 이 루고 애태우는 대장부의 심정을 도라보사 그 어여뿌신 얼굴 한번만 뵈와주사이다.
수동=(안달이 나서) 아가씨 어찌하여 태답이 없읍니까?(갑석에게) 그 다음이 무엇이지?
감석=도련님두 참! 아이 속상해. 그럼 소인이 대신할 것이니 가만히 계시유. 양귀비의 얼굴은 만수산드렁칡에 얽힌 달 속에서 웃는다 하오나 아가씨의 고흔얼굴은
수동=아! 그렇지(큰소리로 받아넘긴다) 태양 속에서 빛나는 진주와 같사와 감히 범인의 눈으로는 그 눈부신 빛 속에 몸을 감추오신 그 아름다움을 감히 짐작도 못하나 그리고 또… 그러하오시나 지혜까 총명하시고 학덕이 출중하신 우리 도련님은 에…
갑석=(수동이의 옆구리를 치며 웃음을 참는다) 에! 우리 도련님은 일찌기 아가씨의 그 높으신 덕과 재색을 아시고 아가씨를 사모하는 정불같으시오며 침식을 잊으시고 아가씨를 사모하고 계십니다.
수동=(머리를 긁적이다가 주먹을 흔들며 큰소리로)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같이 버릴 것이오니 그 얼굴 한번만 뵈와 주십시요.
갑석=아가씨 아무도 없으니 잠깐 아놔 우리 도련님을 뵈와 주사이다.
아녜스=안될 말씀이오니, 어서 돌아들 가세요. 남녀가 유별하고 더구나 명문가이 체면을 봐서도 안될 일이오며 소녀 이미 갈 길이 정해져 있으니 어서들 돌아 가세요.
수동=뭣이 그럼 정혼을 하셨단 말이요? 정혼을 하셨드라도 아가씨만은 남의 손에 넘기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시요.
갑석=도련님의 말씀을 쫓는 것이 아가씨의 장래와 또 가족들을 위해서도 현명하신 도리인가 하오.
수동=아가씨! 아가씨! (이때 문수 질그릇을 지고 등장하며)
문수=질그릇 사려 옹기그릇 사려!
(수동, 하인 깜짝 놀라 문밖으로 뛰어나오며)
수동=에이 재수 없군
갑석=그릇 안사요
문수=아니 댁이 주인이요?
갑석=주인은 어디 가고 없나 보어.
문수=집을 비우고 어딜 갔을까? 외상값을 받아야 하겠는데(지게를 내려놓고 정자나무 아래 앉는다)
수동=오늘은 일수가 사납구나 어쩐지 혀가 잘 안돌아 가고 재수가 없드라니 그럼 난 먼저 갈 것이니 네 재주를 좀 부려 보려므나(퇴장)
갑석=(함께 앚으며) 노형 이댁 아가씨 보신 일이 있오?
문수=전에 한번 본 일은 있오만 왜 그러시요.
갑석=정말로 놀랄만한 인물이지요?
문수=무엇이 놀랍단 말이요?
갑석=천상 천하에 일색 있읍지요.
문수=노형 수선도스럽소. 무엇이 그리 이뿌단 말이요. 사람의 눈이란 참 변덕도 스럽거든.
갑석=아니 여보 노형 그럼 이뿌지 않단 말이요?
문수=내 눈에는 이쁜 건덕지 하나도 없읍디다. 그런 인물을 가지고 예쁘다 한다면 미인 걸려 못살겠오.
갑석=노형이 잘못 봤나 보오.
문수=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 이 근처에는 새 아씨가 하나도 없나보오.
갑석=노형의 눈이 삐뚤어 졌나보오.
문수=노형의 눈이 삐뚤어 졌단 말이요.
문수=아니 그럼 내 눈이 삐뚤어 졌단 말이요? 노형 이러다간 싸우겠우다.
박노인=(부부함께 등장하며) 왜들 그러시요?
갑석=(깜짝 놀라며 일어서 퇴장하면서) 이크! 다틀렸군 하나도 되는 일이 없구나 삼설방이 닿은 것을 모르구…
박노인=저 젊은이는 누군가?
할머니=김가네 종놈 같소이다.
문수=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셨읍니까?
박노인=우리야 잘 있었네만은 자넨 별고 없었나 어서 들어가세(모두 집으로 들어온다)
할머니=아가! 네 오라버니 오셨다.
아녜스=(방에서 나오며) 오빠!
문수=(손목을 마주잡으며) 그동안 잘있었느냐?
박노인=(마루에 앉으면서) 여기 앉아서 얘기를 하세.; 그래 신부님께선 안전하신가?
문수=(마루에 앉으며) 아직은 안전하십니다만 마음을 놓을 수 없어서 공주 사랑골로 잠시 피신을 시켰읍니다. 지금 신부님을 잡으려고 포졸들이전국에 퍼져서 야단이라 한곳에 오래 머무르실 수가 없읍니다.
박노인=아직 체포된 형제들은 없나?
문수=아직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없고 정약용 선생님이 왕세자의 치병을 위해 구양살이가 풀리고 승지 벼슬을 도루 얻어 서울로 갔다는 소식만 들었읍니다.
박노인=아! 언제나 이나라에 신교의 자유가 오려는지? 하루속히 신교의 자유가 오도록 다 함께 기도를 드리세(모두 방으로 들어가며 암전)
곳 - 전장과 같은 박노인의 집방에 등잔불을 켜놓고 박노인과 아녜스가 기도를 드리고 있다가 돌아앉으며
아녜스=할머님께서 잘 가셨을까요?
박노인=네 오라비가 함께 갔으니 염려없을께다.
아녜스=다음에 오빠가 오시면 그때엔 소녀가 신부님께 가겠어요
박노인=오냐! 그렇게 하거라. 벌써 자정이 넘었으니 넘어가 자거라.
아녜스=할아버지 옛날 치명자의 얘기나 해주세요. 소녀도 언니처럼 치명할 것만 같아요. 그리고 소녀는 깨끗한 동정녀로서 천주님께 나갈 결심을 하였아와요(이때 밖에서 인적이 있어 둘이 동정을 살피는데 피투성이가 된 재룡이가 재운을 업고 네발로 기다시피 등장하면서.)
재룡=아이구 아야(재운이를 땅에 떨어뜨리며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