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NC】 가톨릭신문은 평신자의 과업이라고 「웨스터민스터」의 히난 추기경이 4일 사목서한에서 말했다.
그는 신자들에게 가톨릭신문을 도울 것을 요청하면서 그러나 「자선행위」로 가톨릭 신문을 구독하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한 주일 혹은 두 주일 신문을 구독함으로써 여러분들이 스스로 신문의 필요성을 판단케 하기 위해 구독할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아는 것이 많아야 교회의 사업을 다욱 도울 수 있다. 이것은 곧 제1차 「바티깐」 공의회의 정신에 깃들인 것이다. 여러분은 사제가 미쳐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니 평신사제직의 기능을 살릴 기회를 가지고 있다.
최근 몇해동안 우리는 우리의 자랑인 신앙을 이 웃에 전하기를 너무 부끄러워 한다. 가톨릭신문은 매주일마다 여러분의 긍지를 높여줄 것이다.』
추기경은 지난달 교황께서 제정한 세계신문통신의 날을 지적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현대의 문명 이기를 통하여 그들에게 신앙을 전해주어야 한다. 개별적으로 설득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으나 모든 이가 가톨릭 신문을 읽을 수는 있다. 현대처럼 가톨릭이 공공성을 띤 일은 일찌기 없었다.』
『일반사회신문들과는 다른 기능을 가톨릭신문이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학서적을 읽을 겨를이 없으나 가톨릭신문은 신학, 정치, 사회문제를 취급하기 때문에 쉽게 터득할 수 있다.』
『이 나라의 가톨릭신문은 평신자의 손에 있다. 그들은 가톨릭사건을 독자들에게 전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평신자들이 구속사업에 참여할 것을 말했다. 언론사도직은 분명히 이를 실천하는 한 방도이다. 이 나라의 거의 모든 가정은 일요일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우리 가톨릭시낮는 가톨릭신문을 구독함으로 가톨릭신문을 구독하고 있음을 주위에 과시하자.』
『영자(英字) 가톨릭신문은 독자적인 것이다. 교회에 예속되거나 지배되지 않고 평신자에게 예속된다. 외국의 가톨릭신문은 현재까지도 완전히 성직자의 손에 있다. 이 나라 가톨릭신문은 건실한 독립성을 견지하여 신자의 활동을 비파도 하고 칭찬도 한다. 교회당국은 이것을 무척 반갑게 포용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가톨릭신문인들이 독자들에게 사견을 전하는데 막대한 고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의 잘못을 변호하기 위해 그릇된 주장을 하지 않는다. 가톨릭신문을 한번도 읽어본 일이 없다면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