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아 司牧(사목) · 敎理硏究(교리연구) 參席記(참석기) - 敎理敎師(교리교사) 養成(양성)
聖廳(성청)은 養成(양성) · 生活費(생활비) 援助(원조) 한다는데
敎理敎師(교리교사) 養成策(양성책) 없고 그들의 使命(사명) 認識不足(인식부족)
修道服(수도복) 입었다고 모두 敎師(교사) 아니다
敎理(교리) 「센타」의 設立(설립) 時急(시급)
1級(급) 敎師(교사)는 바로 父母(부모)
現職(현직) 一般敎師(일반교사) 登用(등용) 有效(유효)할듯
이 문제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개최되기 약30년전에 벌써 대두된 것으로 1935년 공의회성성은 교령 「PRORIDO SANE CONSILIO」로 각 교구에 교리연구 기구를 설치하여 교리교사의 양성과 교리문제 토의를 위한 연중 계획을 수립하도록 권고했다. 그후 1950년 「로마」에서 개최된 교리 학술 대회에서 다시 한번 이러한 「센타」의 탄생과 조직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마침내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교회의 포교 활동에 관한 율령」 제31조에서 같은 뜻을 되풀이 했다.
아세아 국가들의 거의 반 이상이 교계의 지원을 받아 다수의 활발한 「센타」를 설치하여 해당 지역에서 쇄신적 교리교수를 촉진하고 있다. 이 「센타」들의 주 활동분야는 다음과 같다. 교사들에게 교리서 잡지 및 시청각 교재의 공급 특별 강습, 말씀의 전례서와 새로운 교수법에 의한 아동 교리서의 발간, 참고 도서의 마련, 비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에 관한 「품푸렛」의 배부 및 영화상영 등이다.
거의 모든 「센타」는 교사들을 위한 강습, 특별연구, 하기 강습 및 「세미나」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밝은 이런 영상에 암영을 던지는 두가지 중대한 사실이 있다. 첫째는 아세아 국가들의 거의 반이 교리교수의 쇄신을 촉진시킬 공적 조직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과, 둘째는 이미 존재하는 많은 「센타」가 교리교수에 관한 체계적 계획을 작성하여 그것을 각 본당에서 실시하도록 강요하고 연구심을 자극시키기에 적절한 사계의 권위자들을 가지지 못한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교리연구 「센타」의 가장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는 교리교사의 양성이다. 성서와 전례의 특별한 부(富)로 채워져 마음의 깊은 회개와 그리스도 안에 전 생활이 쇄신을 가져오도록 교회는 교리교사들에게 구원의 참된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제시할 책임을 지워준다.
교회 안에서의 교리교사들이 중요성을 인식한 공의회는 그들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그들의 양성을 장려하는 한편, 포교성성은 그들의 교육과 생활을 위한 특별한 자금을 마련하도록 희망했다.(교회의 포교 활동에 관한 율령 제17조 참조) 사실 포교성성은 율령의 희망과 생활을 위해 거액을 원조하고 있고 한국에도 지급된다는 말을 들었다.
각국 대표들의 보고를 들을 때 퍽 부러운 생각이 들었기에 우리도 해야할 몇가지를 적어 보겠다. 우리 한국에서도 공의회의 의도를 따라 각 교구에 교리 「센타」의 설치를 하루바삐 서둘러야 하겠다. 당장에 완벽을 기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있는 인재만 가지고도 어느정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고 지금부터라도 이 방면의 인재를 양성하면 될 것이다.
인국 일본은 현재 35명의 학생들을 구미 각국에서 양성중이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센타」가 할 일들은 많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교구 「센타」에서 다 하기란 어려울 것이므로 교구 「센타」는 주로 교사 양성을 위한 계획과 실제 교육만을 담당하고 그 나머지 일들은 CCK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교사라고 하면 수녀나 전교회장을 생각하기가 쉬운데 교사란 이런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첫째요 제일 중요한 교사는 가정의 부모들이다. 이들은 천주님으로부터 직접 임명된 교사들이다. 구원의 기쁜 「메시지」를 전달할 중대한 책임은 누구보다도 이들이 질머지고 있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기들의 책임을 망각하고 어린이들을 교리반에 보내기만 하면 모든 책임을 다한 줄로 생각한다. 직업적 교사들을 더 잘 교육하기로 힘쓰는 한편, 이와 병행해서 부모들의 종교적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교리교사를 여러 「그룹」으로 분류할 수가 있겠는데 다른 「그룹」의 모든 교사들을 아무리 잘 교육시킨다 할지라도 한 「그룹」의 교육을 등한히 할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성직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연구 주간의 토론에서도 이 성직자들의 재교육이 많이 강조되었다. 신학교에서 배운 철학 · 신학만으로는 새 시대에 적응한 교리 전수(傳授)를 할 수 없다. 이런 실정에 있으면서도 특히 일선에서 잡다한 포교 업무에 짓눌린 사제들에게 괴로웟던 학창시절을 연상케 하는 재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방임할 수도 없다. 만일 그들이 교리교육에 있어서의 쇄신을 호감을 가지고 받아 들이지 않거나 혹 용기를 잃을 때 자연히 구태연하고 편리한 전수방법에 만족하고 있다.
사제들의 재교육에 이런 난점이 있음을 참작해서 교구 「센타」는 자주 「세미나」를 개최해서 효과적으로 재교육을 실시하고 또 쇄신에 적응된 묵상책과 강론집을 추천해서 그들 스스로도 많은 것을 배우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런 책들은 그들의 사목 사업을 도와 그 짐을 가볍게 해준다.
이미 창간호를 낸 「사목」지와 그 부록 강론집은 이런 교육에 도움이 될 줄 믿는다.
다음으로 교리 전수를 직업으로 하는 교사의 양성인데 이것 역시 교구 「센타」에서 구체적인 안을 수립해서 실시해야 된다. 이 교육안은 교사들의 수와 질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기성교사들의 양성도 중요하지만 뜻있는 유능한 사람을 가르쳐 교리 전수에 임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은 성과를 거둔다. 이 교사의 선택은 신중히 해야 한다. 일자리가 없으니 아무 직업이나 가지겟다는 사람이나, 적은 봉급으로도 만족할 호인을 찾지 말고, 연령과 교육 정도에 상응해서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이런 직에 임하도록 해야되겠다.
『아무도 교육자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교단에 서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착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일지라도 가르칠 소질이 없는 사람은 교리교사직에 임해서는 안된다. 이 점은 특히 수도회 장상들이 명심할 일이다. 수도복을 입은 아무에게나 교리 지식을 넣어 주면 좋은 교시가 되는게 아니다.
이들 역시 교육자로서의 충분한 소질을 갖추어야 좋은 교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상은 공적 기구인 교구 「센타」에서 할 일이다. 다행히 각 교구에 「센타」가 설치되어 교사 양성에 주력한다 할지라도 교사의 수는 언제나 부족할 것이다. 부족되는 이 교사들은 본당 신부들이 채워야 한다. 몇 가지 구체적 방법을 제시해보겠다.
첫째 각 급 학교의 교사 · 교수들을 등용하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많은 이가 훌륭한 교리교사의 소질을 갖추고 있다. 본당신부는 이들에게 평신도사도직의 일부인 「말씀의 설교」를 강조하고 이 사도직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교사들에게 특별 종교교육을 실시한 다음 그들의 개인 사정을 참작해서 신자, 미신자들을 가르치게 한다. 아세아의 여러 나라에서 학교 교사들이 헌시적으로 교회의 포교활동을 돕고 있다 한다. 우리에게만 안 될 이유가 없다.
이런 인재 등용은 본당 뿐 아니라 공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예외도 있겠지만 각 공소마다 가사나 직장에 매여 있으면서도 여가를 이용하여 교회를 위해 헌신할 사람이 한 둘은 있다. 본당 신부는 이들에게 알맞는 교육을 실시해서 신부가 참석지 못하는 주일전례를 지도하고 남을 가르치도록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성사 그 중에서도 고해 · 성체 및 혼배성사에 대하여 잘 가르치면 족할 줄로 믿는다.
마지막으로 과거에 눈부신 활약을 했고 현재도 할 수 있는 유한부인(有閑夫人)들의 등용이다. 지금가지 이들의 주 활동 무대는 혼례와 상례의 장소였다. 이들에게 자기 집이나 다른 어떤 장소에서 근처의 아동들과 예비자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교리지식을 박아주면 교사의 부족으로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까지 「말씀의 설교」가 이루어질 것이다.
黃春興(왜관 성베네딕도회 대수도원 원장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