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린 신부는 「오클라호마」의 「샤우니」에서 열린 성직자 회의에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이렇다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해 6월 「센트 루이스」에서 개최된 연차 「세라」 회합에 참석하기 위해 「오클라호마」에서도 여러사람이 「센트 루이스」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들은 종래의 본당생활과 네린 신부가 제안한 시험적 본당 설립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토론이 「세라」 회합에까지 대두되어 연5일간 논의됐다.
『「오클라호마」에 시험적 본당을 설립할 준비가 돼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즉시 4-5쌍의 부부가 모여 논의할 것을 결심했다』고 스프레흐씨는 회상한다. 7월 11일 「오클라호마」에서 비로소 처음 회의를 열었고 18일에는 19명의 성인(成人)이 참석하게 됐다.
회의가 끝난 후 스프레흐씨는 새 본당 설립 허가를 주교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의 청원서는 아직도 초년생의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더욱 대화를 거듭했다.
장로교의 챨스 도우웰 목사를 「옵서버」로 초빙했다. 그는 한마디의 발언도 없이 시종일관 조용히 참관만 하다가 회의가 실질적 결과를 얻지 못한채 산회하게 되자 「쟈켓」을 입고 조용히 출입구로 향했다. 이때 누군가 『당신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읍니다. 당신의 의견은 어떻습니까?』라고 목사에게 소리쳤다. 도우웬 목사는 문을 도로 닫고 그 자리에 서서 『매우 훌륭한 토론이었으나 행동에 옮긴 것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제 대화를 끝맺고 용단을 내릴 때』라고 말했다.
어느 공장의 실무자로 있는 죤 레븐 하겐씨는 스프레흐씨가 가지고 있는 청원서를 뺏아 먼저 서명한 뒤에 다른 사람에게도 서명할 것을 요청했다.
모두 19명이 서명했다. 그후 일의 진전은 빨랐다. 청원서에 서명한 사람들은 네린 신부와 접촉하면서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이야기 하는 한편 더욱 잦은 회합으로 청원서를 손질했다.
8월 8일 스프레흐씨의 생일을 기해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아니한 주교관에서 리드 주교를 찾아가 지금까지 연구 토론한 것을 보고하는 한편 실천에 옮길 것과 네린 신부를 지도자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하고 완전히 주교에게 순명할 것을 서약했다.
주교는 이미 소식을 들어 알고 있는 터라 놀라지 않고 그들의 요청을 쾌히 승락했다. 첫 미사가 거행되기는 8월 25일 「오클라호마」 시내의 메들리씨 집에서였다. 식탁을 제대로 15명이 주위에 서서 참례하는 가운데 네린 신부가 미사를 올렸다.
그날 저녁 그들은 임원을 선출하고 「요한23세회」라는 명칭을 붙였다. 운영을 위한 기금을 염출하기도 했다. 네린 신부의 거처와 생활비 문제를 의논하여 거처 문제는 편의를 따라 네린 신부가 직접 선택하도록 했다.
신자들의 자녀를 위한 기초계획을 또한 수립하여 이때 처음으로 청소년 활동이 시작됐다.
10월 9일 맥귀네스주교고등학교에서 집회를 가진 후 지금가지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
10월 28일 리드 주교는 비로소 정식으로 「회」의 발족을 공식 선포하고 11월 6일부로 네린 신부를 동 「회」의 영신지도자로 임명했다. 이로써 꿈이 실현됐다.
네린 신부는 「오클라호마」의 「아파트」 한간을 빌려 사재를 이사했다.
회원인 허브 가일스씨는 말한다. 『건물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불편없이 여러방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신자가 곧 교회이지 건물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진실로 깨닫게 됐다.』고.
「회」는 모든 시험을 신중히 진행하고 있다. 주일집회의 중심인 미사예절을 함부로 손질하지 않고 보존해야 할 요소들을 신중히 비판하여 「로마」 전례의 명하는 바를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약3시간이나 계속되는 미사외의 집회는 항상 변한다. 때로는 초빙강사를 모셔다 강연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위원회 보고서를 듣고 때로는 고해성사를 보거나 토론회를 가진다. 최근 어느 주일날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신자들은 왜 교회생활에 더욱 능동적이 되지 못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토론회를 가진 바 있다. 이날의 토론은 아주 길었고 생기가 있었을 뿐 아니라 본당생활 발전에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우기 두 「구룹」은 전례를 인간욕구에 더욱 적합하게 하는 문제를 연구하고 하나는 경신(敬神)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요구하신 계시를 연구케 하여 고다음 주일 이들의 연구를 종합적으로 듣는 한편 더 깊은 토론회를 가졌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