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꽃들 (5)
丙寅殉敎紀念(병인순교기념) 10萬圓(만원) 戱曲當選作(희곡당선작)
발행일1967-06-18 [제573호, 4면]
재운=아이구 엄마! 어머니!
재룡=재운아 정신 차려라 얘! 제발 죽지만 말아라 얘! 정신 차려 얘야(기어서 싸리문께로 오면서 사람 좀 살려주 아이구!)
재운=형! 아이구! 어머니!
아녜스=할아버지! 사람 소리 같은데요
박노인=글쎄다 왠 사람이 짐승에게 물렸다가 살아 오는 것이 아닐까?
재운=엄마! 나 물좀!
재룡=사람! 사람! 살려주!
아녜스=틀림없는 사람 목소리예요
박노인=아가 사람인가 보다. 나가 보자꾸나. 사람이면 살려야지(밖으로 나오면서) 거 누구요? 사람이면 말을하오!
재룡=사람이요 좀 살려 주시요 아이구(박노인과 아녜스 싸리문을 열고 나가 재룡이를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온다.)
박노인=아니이 사람이 짐승에게 물렸나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쯧! 쯧! (방안에다 뉘이면서)
아녜스=여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재룡=아이구 아야 물 좀! 재운아! 네가 죽으면 안된다 안되! 재운아!
박노인=밖에 또 누가 있나 보다 나가보자 (함께 나와서 밖을 휘둘러 보다가 재운을 발견하고 부축하여 방으로 데려다 뉜다)
아녜스=이게 왠 일일까요.
박노인=글쎄다 여보게들 정신 차리게 정신을 좀 차려! 아가 밖에 나가 물좀 가져온(아녜스 밖에 나가 물을 떠온다)
여보게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리게
(재룡이 물을 마시고 누으면서)
재룡=재운아!
재운이 어디 있어(재운이에게 기어가서) 재운아! 네가 죽으면 안된다. 꼭 살아서 장원급제 해야한다 재운아! 정신 차려!
재운=엄마 나 물좀! 형! (물을 마시고 네 활개를 펴고 정신을 놓는다)
재룡=이놈들 두고 보자! 이놈들아! (역시 정신을 놓고 퍼진다)
박노인=가만있자 짐승에게 물린 것이 아니라 강도를 만난 것인가 보다.
아녜스=할아버지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야 하지오.
박노인=좋은 수가 있다. 지상으로 둔 웅담을 먹여야 하겠다.(벽장에서 약을 내려서 물에 타서 먹인다)
재룡=(약을 마시고서) 이놈들! 김가놈들 이원수! 이원수를! (다시 쓰러진다)
재운=형! 저! 저 강도놈 저 강도들!
박노인=가만있자 어데서 본듯도 한 사람들인데 오라! 일전에 만났던 이씨네 사람이 틀림없구나. 이 도령은 그때 그 똑똑하던 서생이고 아! 그렇군 서울로 과거 보러 가다가 강도를 만난게로구나 이를 어쩌나.
아녜스=할아버지 아시는 분들이예요? 이렇게 정신들을 놓았으니 살아나기는 힘들 것 같아와요. 할아버지 세나부쳐줄까요? 착한 사람들이라면 세가 될거예요.
박노인=아! 그렇구나 내가 보기엔 착한 사람들이었다. 이 분들의 서조인 이가환이란 분이 한때는 바오로 종도처럼 공조판서와 충주목사로 있을 적에 우리 교우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하였으나 노년에는 회개하여 열심한 교우로서 치명을 하였고 그 가족 중에 신자가 많았으나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가 없구나.
아녜스=그럼 세를 부쳐 주세요.
박노인=그러자 물을 이리 주렴 보명을 무엇이라 할가 형제니까 시몬 다두라고 하지.
아녜스=좋도록 하셔요 그러나 이 총각은 첫 치명자의 이름을 따서 스데파노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박노인=그래라 우리 아기의 의견을 존중해서 스데파노라고 하지(두 사람에게 세를 준다) 시몬아! 네가 만일 받을만 하면 내가 너를 씻기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노라(계속하여 재운에게 세를 준다. 그리고 둘이 장궤하고 기도를 올린다)
아녜스=(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직 죽지는 안했어요.
박노인=아직 숨은 붙어 있으나 살기는 힘들 것 같구나.
재룡=(몸을 뒤틀면서) 아이구 어머니!
박노인=여게 정신 좀 차리게! 응!
재룡=이놈! 이! 강도놈 아! 이 김가놈들아! 으응! (울면서) 김가놈들! 원통하고나 원통해! 이 원수놈들! 재운아! 곡 성공하여 이 원수를 갚아다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아녜스=어마! 할아버지 이분 운명하나봐요. 이를 어쩌나 예수 마리아!
박노인=여게 정신 차리게. 자네 천주님 아나? 천주학.
재룡=(작은 소리로) 어른들에게 얘기 들었어요. 성모 마리아도 처-천당도 예수도 어-어머-니
박노인=자네도 천주학꾼이 되었네.
재룡=하할아버지. 고-고마워요. 도-동생 재운이를 살려주!(큰 숨을 쉬고 운명)
박노인=주여! 이 불상한 영혼을 당신에게 보내나이다. 굽어 살피소서.
아녜스=예수 마리아 성모님 이 동생만이라도 살려 주옵소서.
재운=물! 어머니! 나 물좀.
아녜스=(물 먹인다) 성모님! 이 사람이 살아서 주님과 나라를 위해서 빛나는 일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박노인=또 세도 싸움 틈에 죄없는 사람이 희생되었구나 이 나라에 언제나 당파싸움 세도싸움 그리고 박해가 없어져서 평화를 누릴 것인고 주여! 이 불상한 나라와 백성을 돌아 보옵소서.
아녜스=할아머지 아시는 분이면 가족에게 알려 드려야지요.
박노인=오리길이 넘는데 이 바뭊엥 너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으니 날이 새기나 기다리자.
재운=(몸을 뒤틀며 벌떡 일어 앉으며) 여기가 어딥니까? 할아버지 아가씨!
박노인=안심하게 높은 미 고개일세.
재운=형! 형님!(재룡의 시체위에 엎드려 통곡한다) 나만 두고 왜 혼자 갔어 형! 형님!
박노인=도령! 진정하게
재운=꼭 함께 살아서 원수를 갚자더니 형! 나만 두고 왜 혼자 갔어 형! 아이고 어머니!(뒤로 넘어지며 다시 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