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會(교회)와 音樂藝術(음악예술) ⑤ 베에토오벤의 藝術(예술)과 宗敎性(종교성)
運命(운명)에 挑戰(도전)한 藝術(예술)의 象徵(상징)
終局的(종국적) 眞理(진리) 宗敎(종교)임을 示唆(시사)
宗敎藝術(종교예술)의 至美(지미) - 「莊嚴(장엄)미사곡」
베에토오벤이 西洋文化史에서 가장 뛰어난 音樂藝術의 創造者라는 데 異論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運命에 도전해서 이른바 「苦悔」를 通해서 歡喜』에 到達하는 그의 藝術生涯는 不屈의 意志의 한 象徵처럼 되어있다.
그의 人間과 藝術을 成立시킨 여러가지 주변의 狀況, 例컨데 啓蒙主義思想이라든가 프랑스革命이라든가 또한 民主的精神이라든가 하는 問題는 많이 論議되어 왔지마는, 그의 道德性과 宗敎에 對해서 그릇된 評價를 하는 例가 적지않다. 이래서는 到底히 偉大한 樂聖의 참된 모습을 理解하지 못할 것이다.
『힘껏 善을 行하고 무엇보다도 自由를 사랑하고 主權 앞에서도 眞理를 背反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手帖에 記錄한 베에토오벤에게 있어서, 終局的인 眞理는 宗敎的 眞理였다는 것을 그는 創作行爲로써 證明하려 했고 또한 證明했던 것이다.
가톨릭精神은 그의 人生의 基調였다.
베에토오벤이 태어난 獨逸의 「본」과 靑年期부터 實際的으로 그의 藝術의 溫床이 된 오스트리아의 首都 「비인」은 全的으로 가톨릭的 雰圍氣와 分化가 支配하는 곳이었다.
그의 作品은 敎會典禮를 위한 것이 많지는 않다. 그러므로 中世紀의 作曲家와 같은 意味에서의 敎會作曲家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注意해야 할 것은 宗敎藝術에 있어서 作品의 素材가 반드시 宗敎的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닌 것이다. 例컨데 非宗敎的으로 聖像을 그리는 것보다 宗敎的으로 한 少女를 그리는 것이 더욱 높은 價値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一般的으로 널리 알려진(特히 韓國에서) 베에토오벤의 人間像은 所謂 交響曲 「英雄」 「運命」 피아노 協奏曲 「皇帝」 歌曲 「피델리오」 등에서 表現되어 있는, 새 질서를 위한 英雄的 反抗과, 自由에 대한 讚美로 要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現在와 人生에 관한 이러한 問題性은 「後期」에 이르러 靈魂과 來世의 問題에로 옮겨지는 것이다. 이로써 이른바 初期의 藝術的 아름다움을 찾는 「遊戱的」인 것에서 中期의 個性的 모랄을 追求하는 「倫理的」인 것을 거쳐 後期의 「宗敎的」인 것에로 到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意味에서 人間이 낳은 가장 偉大한 藝術인 「莊嚴미사曲」과 「第9交響曲」은 베에토오벤의 宗敎性을 代表하는 作品이라 하겠다.
베에토오벤의 宗敎性은 敎理를 다만 順從하는 型이 아니고 主觀的인 表現이 强調되어 있다는 点과 또한 自然의 아름다움과 調和 속에서 主의 榮光을 찾을려는 特色을 가졌다. 이러한 特色은 中世의 典型的 敎會音樂가인 팔레스트리나와 좋은 對照가 된다.
베에토오벤의 「莊嚴미사曲」은 가장 高貴한 宗敎音樂인 同時에 藝術音樂인 것이다.
흔히 自由 平等 博愛라는 프랑스革命의 理念이 藝術的으로 形象化 되었다고 말하는 「第9交響曲」의 마지막 合唱은 베에토오벤 自身의 敬虔한 信仰告白이며 天主께 대한 온 人類의 讚美인 것이다.
얼싸 안아라 億萬人이여! 온 世界의 입맞춤을 받아라. 兄弟들이여! 저 星座 위에는 慈愛로운 아버지 계시나니. 무릎을 꿇고 있는 가 億萬人이여! 世界여 그대는 創造主를 아는가? 星座위에서 主를 찾아라 主는 그곳에 계시도다.
또한 새로운 心境에서 着手할려던 「第10交響曲」 草案에는 「敎會調에 의한 한 交響曲의 경건한 노래 - 천주여, 우리 너를 찬미하나이다」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여러가지 制限된 條件 아래서 西洋音樂을 接觸하는 우리 韓國에서 樂聖들의 世俗的 藝術曲을 들을 機會가 많지마는 한 藝術家의 精神性과 人格性의 基調的 表現인 宗敎音樂에 대한 關心과 理解가 매우 적다는 것은 섭섭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들은 베에토오벤 뿐 아니라 西洋의 여러 樂聖들이 그들의 生活과 藝術을 發展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종교가 얼마나 큰 「動力」이 되었는가를 깊이 認識해야 할 줄 안다.
김진균(啓明大 音樂 敎授 哲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