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慶祝(금경축) 맞은 朱在用(주재용) 神父(신부)
파란의 司祭生活(사제생활) 50년
東西思想(동서사상) 融合(융합)에 평생을
80老齡(노령)에도 晝耕夜讀(주경야독)
先儒(선유)·上帝思想(상제사상) 등 著書(저서)가 웅변
사람은 한평생을 값있고 알차고 보람있게 살아가려면 가시밭길을 걸어야하고 험준한 산을 넘고 물결센 바다를 건너야할 것은 모든 위인·열사·성현들의 전기에서 보는 상식인 것이다. 이번 주 바오로(朱在用) 신부님의 사제서품 금경축(金慶祝)을 당하여 필자도 그 축전(祝典)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구태여 그날의 광경을 보고 느꼈다기보다 평소에 그 님에 대하여 느껴왔던 소감의 일단을 말하고자 한다. 그날(18일) 금경의 축전은 의외로 표면상으로는 간소하면서도 명랑한 분위기의 호화판 이어서 보는 이로하여금 이 축전을 마련해주신 춘천교구장 박 주교의 폭넓은 배려에 감격하였다. 여기 표면상이라는 그 이면에 주인공이 눈물과 목메인 소리로 답사를 일관하게 되어 그만 눈물의 바다를 이루게 한 사실이 필자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이다. 신부님의 춘천교구생활 20년을 하루같이 염려해주고 항상아끼고 존경해 주는 구 주교님의 솔직한 찬사와 박 주교의 과찬없는 축사와 과거를 추억하는 「유모러스」한 김 주교(마산)의 축사며 신부님의 인격자격, 우리 한국교회에 있어서의 그 업적과 존재성을 알려주는 신자대표의 축사 그 모두가 금경을 맞이하는 신부님에게 적절하고도 당연한 정신적 선물임에 틀림없겠지만 왜 눈물과 목메인 소리로 답사를 해서 듣는 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마음에 슬픔을 물결치게 하였을까?
춘풍추우 50년! 평탄한 길, 꽃그늘 속에서 거닐기보다 가시 넝쿨 속에 헤매어 왔던 한 많은 반세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금경축을 지낸 내외국인 신부들이 드물게 있었지만 대개 그분네들의 50년 사제생활로 보아서 다소 역경이 있었지만 평범한 것이 보통이었는데, 주 신부님의 50년 사제생활은 너무나 파란곡절이 심했던 것이다. 지면관계로 자세히는 다말 못하겠으나 전주·광주(임시서리)
교구장 시절은 일제 말년의 최후 발악은 물론 교회내의 어려웠던 일들, 해방후 대구 교구장 시절의 일들, 평소 남다른 애국애족심이 해방된 조국 교회를 빛내보려는 포부와 계획을 성취못한 일들이 오늘에 와서 추억이라면 너무나 쓰라린 추억일 것이요, 사실이라면 너무나 눈물겨운 일이었기에 이 금경축을 맞게된 그분이 눈물과 목매임이 없었겠으랴?
그분은 너무나 알고, 너무도 총명하고 너무도 무리를 뛰어난 인재이다. 아는 것이 많고 총명해 박하고 뛰어남이 남다른 빛난 50년을 장식한 그인 것이다. 그리하여 희비의 쌍주곡(喜悲双奏曲)으로 그분의 금경을 축하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신부님은 한국교회사학의 원로인가하면 우리나라 고대사에 있어서도 권위자이며, 신학과 교회법의 해박한 존재로서 그의 저서(著書)가 말해 줌같이 동양 성현들의 상제(上帝)사상과 제사 문제를 가톨릭의 천주사상과 경신행위에 상통융합시킴이나, 지금은 불교를 연구하는 중, 불타의 사상과 불교의 유래를 남다른 안목으로 캐내는 솜씨야 말로 그분이 너무 늙은 것이 한될 뿐이다. 불행히 그님을 우리 한국교회가 잃는다면 여러 면에서 공허감과 아쉬움이 클 것을 여기 말하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