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10) <第一話(제1화)> 나를 만나보시려면 ⑩
발행일1968-04-28 [제616호, 4면]
승재는 미닫이를 열었다. 정옥이가 와있었다.
『오셨군요. 잠간 들어 오시지오. 』
승재는 조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제 밤에 오셨었다는데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예. 그러니 잠간 들어 오시지오. 』
옥은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와서 윗목에 단정히 앉았다. 검소하되 깨끗한 옷을 항상 몸에 걸치고 머리도 곱게 빗고 있었다. 콧날이 유난히 오뚝 날이서 보이는 것은 마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서 그의 옆얼굴을 비치고 있는 때문일 것이다. 승재는 잠시 정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등에 오싹하고 일어나는 가벼운 전률을 느끼었다. 조금전에 그의 초자연적인 모습을 본 때문인가 정옥의 얼굴에는 어떤 숙연한 위엄이 깃들여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맑은 유리알에 선이 반사하는 것처럼 그의 모습에서는 쌀쌀한 차거움이 느껴졌다.
『사실은 갑자기 생각이나서 무슨 말을 드리려고 건너방문 앞에서 불렀으나 대답이 없으셔서 뒤꼍으로 갔다가 거기서 순녀를 만났읍니다.
승재는 우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말조차 승재는 몇번이나 더듬지 않으면 안되었다.
(흥, 오늘 내가 갑자기 웬일인가? 날마다 우습게 대하던 정옥이가 아니냐. 그까짓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나서 이렇게까지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넌센스이다. 흥, 암만해도 내가 술이 덜 깬것이나 아닐가?)
승재는 이런 생각이 순 간에 치밀어 올라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그대로 스러져버리었다. 아무리 고쳐보아도 정옥은 그대로 날카로운 빛이되어 승재의 마음을 압박하였다.
『글쎄요. 순녀란 년이 아저씨가 무슨 하실 말씀이 있어서 왔다 가셨다고 해서 혹시 무어 필요한 거라도 있으셔서 그러시는게 아닌가 하고 왔는데요. 』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단지 긴급히 곧 드려야할 말씀 있어서…. 』
『무슨 말씀이신데요?』
그러나 승재는 말문이 막혀버리었다.
이렇게 막상 정옥을 대하고 보니 말을 하기가 거북하였다.
『사실은 사과를 드리려고 그랬습니다. 』
『예? 사과라구요?』
정옥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렇습니다. 생각하면 저는 그동안 정옥씨 한테 너무 지나친 행동을 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
『왜 갑자기 또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정옥은 놀라움이 지나쳐 서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졌다. 승재를 쳐다보는 그의 눈에는 딱한 빛이 완연하였다.
『아까 사진문제만 해도 그렇지요. 정옥씨는 알지도 못하는 일을 저는 꼭 정옥씨가 한 짓인줄로 알고 너무 지나친 말씀을 드렸읍니다.
『원 그 까짓 일을 가지고 사과는 또 무슨 사과를 하신다고 그러세요. 저는 벌써 잊어버린 걸요. 』
정옥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잠시도 놓지지 않고 주시하던 승재는 그의 미소가 평범한 여인으로서는 너무 지나치게 침착하고 으젓한 것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어디 또 그 뿐입니까. 정옥씨는 이변변치 못한 주인 없는 가정을 위해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노력을 해 주시는데 저는 위로나 사례는 못할망정 실례가 되는 불손한 언동을 너무도 많이 했읍니다. 사실은 사진을 바꾸어 낀 것은 시골 누님이 하신 일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읍니다. 그래서 저는 정옥씨 한테 무어라고 사과의 말씀을 해야 할는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읍니다』
승재는 진심으로 머리를 수그리었다.
『그런 일에 사과를 하신다면 그건 공연한 일을 하시는 거에요. 』
정옥이는 뺨이 발갛게 물이 들며 낮으막이 속삭이듯 말하였다. 그 목소리가 승재는 여느 때의 정옥이 같지 않음을 느끼었다.
『제가 보기에 김선생님은 지금 병자나 마찬가지입니다. 』
『예? 병자라구요?』
『실례가 되면 용서하세요. 저는 지금 제가 생각한대로 솔직히 말씀드리는 거에요. 』
정옥은 변명을 하고나서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김선생님은 은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영혼에 큰 타격을 받으신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 상처 때문에 갈팡질팡하시는 거에요. 그건 한때 저도 같은 사정이었으니까요. 저도 남편이 죽었을때 하늘이 캄캄하여 온통 세상의 빛을 잃어버렸었어요. 그때 만일 저에게 한가닥 빛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는지도 모르지요. 』
『 흥, 그러셨을 테지요. 그런데 그 빛이란 무어지요? 종교 이야기입니까?』
정옥은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떨어뜨렸다가 다시 반짝 얼굴을 들어 승재를 바라보았다.
그때 정옥의 시선과 마주 치자, 승재는 또 오싹하는 전율을 느끼었다. 그의 눈동자에 한줄기 날카롭고 차거운 섬광을 느낀 때문이었다. 그것은 결코 한 평범한 여인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정옥은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종교라고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면 너무 내용이 싱거울 겁니다. 그보다도 남편이 어디로 갔는지 그 행방을 알게된 거지요?』
『행방을 알게 되었다구요?』
승재는 놀라서 입을 벌리었다.
『알게 되었지요. 그것도 그냥 알게 된게 아니고 분명히 알게 되었지요. 그러구 남편을 만나볼 수도 있게 되었답니다. 』
『뭐라구요?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구요? 어떻게요?』
『그건 지금 김선생님께 말씀 드려도 못 알아들으실 겁니다. 아니 혹시 말씀드린다면 김선생님은 저를 미쳤다고 비웃으실는지도 모릅니다. 』
『천만에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테니 말씀해 보세요. 』
승재는 의혹에 찬 눈으로 정옥을 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