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自由로운 決斷의 막바지
이러한 위기상황은 그 어느 것이나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극복될 수도 또한 이해조차 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예정된 나의 인생항로(航路)를 따라 항행하는 나를 침몰시키고 난파(難破)시켜 버리는 산호초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현세에서 내가 나의 존재를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모자라는지를 새삼스레 깨닫게 하여준다. 나의 인간됨, 내가 당하는 일 나의 운명은 나 자신을 훨씬 초월한 힘에 달려있는 것 같다. 생명의 근저(根底)는 사라져 버리고 나는 오직 침묵에 잠긴 허공만을 응시할 뿐이다. 저 멀리 저편에도 무엇이 있을가? 그렇지 않으면 나만 혼로 있단 말인가? 이 모든 것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그 모두가 하나의 잔인스런 장난이란 말인가?
나는 직접적인 대답을 얻을 수가 없다. 표면상, 양자택일이 좋을 것 같다. 나는 나의 삶에 있어서 자유로운 결단의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이리하여 전혀 나 안에 출처(出處)를 두지 않은 어떤 힘 앞에서 또한 나의 전인간에 의해 구체화되는 것과 못지않게 숨어있는 어떤 「타자」(他者)에 의하여 고무(鼓舞)되는 듯한 선택의 순간에 나 순수한 부조리(不條理) 최종적인 자유선택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느낀다. 여하튼 나의 시력이 흐려 방향을 바로 잡지 못한다. 손치더라도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것을 보유하고 인생의 가치를 간직하려고 애쓰는 편재자(遍在者)가 있음에는 틀림없다. 나는 이 불가사의한 존재에게 전적인 신뢰와 확신을 가지면서 나 자신을 활짝 열어 놓는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신에 대한 신앙을 긍정한다.
그렇다고 겉으로 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아직도 참고 견디어야할 비극적 사건이 남아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뚜렷한 무의미(無意味)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위기를 간파(看破)해 나가기 위하여 묵묵한 용기를 발견한다. -괴로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을 가지면서. 이제 해결을 얻을 수 있고 또 얻어야 하니 나는 해결 모색(摸索)에 필요한 창조적의지(意志)를 발견한다.
나는 어쨌든, 새로운 나의 미래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신과 협력하고 있음을 느낀다. 위기는 나를 파멸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인생의 모든 능력과 힘을 지닌 저 깊은 근원(根源)-신에 대한 신앙-에로 개방시킴으로써 나를 더욱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로 불러들였을 따름이다.
■ 信仰은 사치가 아니다
만일 우리가 위기(危機)의 표본을 국가적 또는 세계적 규모로 투사(投射)해 보기만하면, 위기 극복에 대한 신앙의 필요성을 더욱 깨달을 수 있다. 오늘날 인간은 날이 갈수록 더욱 많고 더욱 거대(巨大)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는 자신 보다 초월한 그 어떤 존재 신앙(信仰)함이 절대로 필요한 것임을 재삼 깨닫는다. 우리는 서로가 다른 국가적 민족적 집단들로서, 우리 자신의 모든 파당(派黨)과 사소한 견해를 초월하여 의미(意味)와 가치(價値)의 중심을 포착(捕捉)하지 않거나, 또 우리가 세계집단으로서 세계적인이상(理想)을 향하여 자신을 헌신함으로써 현시(現時)의 고집을 일소(一掃)하지 않으면 우리의 세계엔 미래(희망)가 없다.
오늘날에 있어서 신에 대한 신앙은 하나의 사치품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人間性)의 사활(死活) 문제이다. 인간왕국건설에 대한 이상을 전혀 환상적인 것으로 보거나, 인간적으로 말해서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여 인간왕국건설의 책임을 묵살하고 외면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심의 상실일 뿐아니라 신에 대한 신앙의 상실인 것이다.
예를 들면 지구상의 인종분쟁이 형제애로써 극복 되거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인류 복지향상(福祉向上)을 위해 상호협조의 기틀을 발견할 날을 꿈꾸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보다 더한 것은 이러한 이상(理想)을 추구하여 생명마저 바친 사람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모든 노력을 무가치한 것으로 단죄(斷罪)하는 일이다. 역사의 전목적(全目的)을 이렇듯이 냉소(冷笑)하여 거부해버리는 것은 바로 인간으로 부터 생존의지(生存意志)를 박탈하며, 세계를 희망없는 야만(野蠻)의 상태로 몰아넣으려 위협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믿어지지 않는 이러한 과업수행에 착수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인류 발전의 진로(進路)를 조명(照明)하여 방향을 제시해 주는 어떤 초월자에 대한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뿐이다. 비록 어떤 말로불리어지든 간에 그것은 바로 신에 대한 믿음이다. 이러한 신앙만이 그러한 위업(偉業)을 성취한 것 같다. 예수회 회원으로서 저명한 과학자인 떼야르드·살뎅이 말한 것처럼 『인간다운 인간일수록 자신보다 위대한 어떤 존재에게 자신을 바칠 필요성을 더욱더 느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