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주교들 중 가장 늦게 성성되어 최남단 시골 교구장으로 2년간 일하다가 일약 首都 대주교로 염전한 김 대주교의 앞날이 기대된다.
66년 5월 31일 마산교구장으로서 성직자와 평신자사이에 부러운 人和를 조성, 없는 새살림을 꾸려가면서 재미있게 일하던 주교를 잃어버린 마산교구로서는 퍽 섭섭한 것이나 지난 세계주교 「시노드」에 한국주교를 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하여 거기서 그의 역량이 인정되었음인지 이번에 13만 수도교구 대주교로 기용된 것이다. 그의 표어가 『여러분과 모든 이를 위하여」 이기에 어디를 가더라도 남을 위해 주님의 뜻에 따라 충실히 일하겠다고 그저 담담하게 첫 소감을 말했다.
丙寅迫害때 순교한 조부때부터 3代 독실한 신자가정. 부친 金永錫씨의 8남매 중 막동이. 어릴적부터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야심만만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이미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는 말했다. 그 성격이 오늘의 「리더쉽」을 길러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신대학 신학시절의 총급장, 안동, 김천교회의 주임, 성의중고등학교장, 가톨릭시보사사장 등 「리더」하는 입장에서 훌륭히 임무를 완수한 수완가이다.
작년에 내한한 대주교의 은사 듀몰린 師는, 그는 日本上智大學재학시 「알로이시오」 기숙사의 열심한 학생이요, 성모회에 나오고 묵상회에도 여러번 참가 했다고 술회했다. 日語는 물론 獨·佛·英·羅語를 자유로 구사한다. 학병시절 종전후 「함」섬에 美國人들과 얼마간 같이 있으면서 영어를 할 기회가 있었고 학구차 巴里에도 있었다. 독일 「뮨스터」대학 에 오랜 연구생활을 했기 때문에 독어는 얼굴을 보지 않으면 독일인이라 할 만큼 유창하다. 사회학 전공. 얼굴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좀 검은편. 유학당시 한국을 소개하는 기회가 있으면 옆에있는 예쁜 한국아가씨를 가리키며 나는 좀 검지만 한국사람은 이렇게 희다는 주석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주교복장에 반영되어 紅顔의 美少年처럼 더 젊어 보인다. 퍽 호감이가는 서민적인 성격에 농을 잘 받아주어 누구든지 친근할 수 있다. 반면 만사에 퍽用意周到하며 치밀하고 조직적이어서 일에 실수가 없다.여기 독일에서 얻은 사무적인 성격이 가미되면 좀 매섭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가난한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할때는 굉장히 열을 올린다. 자신이 가난을 역설할뿐 아니라
「시보사」 사장당시 바쁜 가운데도 시내 희망원 교도소 등에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친히 불우하고 가난한자들의 빛이 되어주었다. 역시 「시보사」 재직시 공의회 교령 등을 모두 숙독연구 번역할 기회가 있어 공의회 폐식에 환하다.
이점 새교구에 가서 교회를 현실사회에 적응시켜 성직자와 교우사이를 좁히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어 무엇보다 믿음직하다. 한국 가톨릭의 막내동이 주교가 젊은 대주교로서 「뉴프론티어」의 기수가 되어 성직자와 평신자의 참된 사랑과 인간적인 승화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데 대해 우리는 많은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독서를 즐기며 마테오 수난곡을 유독 즐긴다. 마산의 주교좌에서 툭틔인 앞바다를 내려다보기를 좋아하다가 밀립한 고층건물 가운데서 격무에 시달려 밤잠 못잘가봐 자못 걱정된다. 건강을 비는 바 이다.
申相祚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