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宗敎觀(종교관)] ⑤ 모든 行動(행동) 信條(신조)로 一貫(일관)돼야
인생의 眞味(진미) 靈肉(영육)의 統合(통합) 調和(조화)에 있어
발행일1968-05-05 [제617호, 4면]
나의 종교관 이라고 하여 뚜렷이 내세울만한 종교관은 내게는 없을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실천해 보려는 일반적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가끔 생각해 본다. 삶의 의미 또는 기본원리라고나 할지. 내가 그것만 얻으면 인생의 보람이 있고 또 그것을 도표로하여 생활과 생애의 여러가지 문제를 처리해나가려고 애쓰는 그런 원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항상 이렇게 느낀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평소에는 오히려 둔감하다가 위기 같은 것을 당하면 이런 생각이 몰려올 뿐이다.
그러니 이런 의미에서 경건한 종교인의 범주에는 가까이도 가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나는 삶에 있어서 영적부분과 육적부분이 잘 나줘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두가지가 조화되고 통합되는데 인생의 진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사람의 사상과 행동도 하나로 연결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행동에 연결되지 않는 종교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은 그 정신의 표현이며 삶의 내면적인 도포로서의 종교도 그 사람의 모든 행동 침투하고 그 속에 표현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외양에 있어서 경건 자체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여러가지 행동은 그것들을 꿰뚫는 보이지 않는 신조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행동적 종교관이다.
나는 내가 믿는 기독교외의 종교에 대하여 무지하다. 그러나 그들도 각기 훌륭한 이치와 원리가 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믿는 기독교도 심오하고 궁극적 가치를 지닌 종교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이 기독교라는 범주 안에서는 나는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간의 차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다 하나라는 생각이 내 머리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최근 수년이래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교회합동운동에 대해 전적으로 찬동한다. 인생과 세계에 대해 기독교의 정신-사랑과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대하면 그만이지 무슨 교리와 교파의 패갈림들이냐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요즘처럼 사회가 급변하고 생활이 복잡화 해갈때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일견 매우 어렵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럴 때일수록 생활과 사회관계가 복잡해지면 질수록 그 복잡한 일에 어떤 통일적인 의미와 가치를 불어 넣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나는 요즘 더욱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