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11) <第一話(제1화)> 나를 만나보시려면 ⑪
발행일1968-05-05 [제617호, 4면]
『그러면 김선생님,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을 비웃거나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진심으로 들어주시겠어요?』
정옥은 반짝 빛나는 눈으로 승재를 찬찬이 바라보며 다졌다.
『원 별 말씀을 다하시는 군요. 그만하면 정옥씨의 마음을 알만큼 알고 있는 터인데 어째서 건방지다고 생각하거나 비웃을 리가 있겠읍니까? 그런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럼 말씀드리겠어요. 사실은 이 말씀을 좀더 있다가 선생님께서 마음이 더 가라앉으시면 드리려고 하던건데 일이 조금 급하게 되어서 총총이 말씀드리는 겁니다』
『예? 일이 급하게 되다니요?』
승재는 놀라는 얼굴을 한다.
『그건 차차 아시게 될 일이고 또 지금 말씀드리는 일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이어요.』
정옥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가하고 속으로 조금 벅찬 기색이 보이었다.
『김선생님』
『예?』
『사실은 애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전에 선생님께 전하라는 유언이 있었어요』
『예? 유언이라구요?』
『네. 절보고 선생님께 꼭 말씀드려달라는 간곡한 유언이 있었어요.』
『그럼 어째서 그 유언을 지금까지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읍니까?』
승재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 듯이 정옥에게로 다가앉았다.
『그야 곧 말씀드리고 싶었지요. 그렇지만 유언이 너무도 중대해서 아무때나 함부로 말씀드릴 수가 없었지요.』
『중대한 유언이라구요? 그렇다면 더욱이나 빨리 말씀을 해 주셔야 할게 아닙니까?』
승재는 사뭇 항의하는 말투다
『그렇지만 이 유언은 생님께서 먼저 들으실 준비를 하지 않으시면 들으시나 마나가 되기 쉽습니다.』
『준비라니요?』
『그만큼 일이 중대해서 서뿔리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는 것만 이해해 주세요. 그러구 지금 와서 준비라는 건 그저 들으시고 비웃지만 말아 주시면 되어요』
『글쎄, 무슨 말씀인지 모르지마는 은희가 유언으로 남겨 놓은 말을 제가 비웃을 리가 있읍니까. 염려마시고 빨리 말씀이나 하세요.』
승재는 더욱 조급하여 재촉을 한다.
『그럼 말씀드리겠으니 잘 들으세요. 이런 말은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책임이 큽니다.』
『………』
정옥은 한번더 다지고 나서 단정히 고쳐 앉았다.
『애 엄마는 자기가 죽은 후에 가장 염려가 되는 건 선생님의 일이라고 말했어요.』
『예?』
『애 엄마는 자기에게 대한 선생님의 뜨거운 애정을 잘 알고 있는 눈치 이었어요. 그래서 자기가 죽은 후에 아이들이나 살림보다도 선생님을 더욱 근심했던 거에요.』
『글쎄요. 무슨 근심인가요?』
『선생님이 크나큰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혹시 절망에 빠지지 않나 하는 근심이지요. 그래서 저한테 선생님이 정 참을 수 없도록 자기가 그리우실때에는 자기를 만나볼 수 있는 방법을 일러드리라고 유언을 한겁니다.』
『그래요. 그래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제가 아까 말씀드린 제남편을 만나보는 방법과 같은 겁니다.』
『그게 무어지요?』
『선생님, 말씀드릴테니 진심으로 솔직하게 들어주세요. 이것은 애 엄마가 죽기 전에 저에게 마지막으로 분명히 말한 유언이어요.』
『진심으로 들을테니 염려마시고 말씀해주세요.』
승재의 얼굴은 맑아 보이었다. 비웃음 같은 것은 기기 조금도 찾아 볼수 없었다. 그걸 확인하고 정옥은 다시말을 계속하였다.
『기도를 드리는 일입니다. 죽은 사람은 주의 뜻에 의해서 이 세상을 떠난 겁니다. 주께서 주신 목숨이 기한이 다 되니까 다시 거두어 들이신 겁니다. 그것은 절대로 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미워서 빼앗아간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계획하셔서 모두 필요하시니까 하신 일입니다.』
정옥은 살몃이 승재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는 그저 고요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구 이왕에 죽은 사람뿐이 아니고 우리들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죽는게 아닙니다.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건 저도 모두 교회에서 들은 풍월이지요. 그걸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남편이 죽었어도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장차 갈곳으로 한걸음 먼저 간것 뿐이지요. 그래서 몸은 서로 떠나 있지마는 마음은 서로 통할 수 있읍니다. 통할 수 있으니까 저는 고요히 기도를 드리며 저세상을 묵상하면 죽은 남편을 만날 수 있고 또 이야기도하고 어려운 일은 의논도 할 수 있지요.』
정옥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뛰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참으로 마음이 흐뭇하고 자랑스러움을 느끼었다. 참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뼈가 저리게 느껴졌다. 이런 행복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도 없고 깨어질 근심도 없는 순수하고 영원한 것이었다.
『그래 은희가 저에게 전하라는 유언은 무어지요?』
말없이 듣고 있던 승재는 궁금한 듯이 물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지마는 승재는 훨씬 침착하여 마음이 안정된 것 같이 보이었다.
『애 엄마는 분명히 저에게 말했어요. 자기가 죽은 후에 만일 선생님께서 자기가 참을 수 없게 그리우시면 만날 장소가 있다구요?』
『그게 어딥니까?』
승재는 눈이 둥그래졌다.
『성당입니다. 성체를 모셔놓은 성당제단 앞입니다. 거기 오시면 자기를 만날 거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승재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