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꽃들 (7)
丙寅殉敎紀念(병인순교기념) 10萬圓(만원) 戱曲當選作(희곡당선작)
발행일1967-07-02 [제575호, 4면]
갑석=아씨! 그런소리 함부로 하지 마세유 괜히 진사님께 그런 뜬 소문 들어갔다가는 큰일이유.
수연=기왕에 저지른 일이니 끝장을 내야지 재운이란 놈이 다시 과거를 보러가면 장원급네는 맡아놓고 할 것이니 어떻게 해서든지 그놈이 서울에 못가게 만들어 놓아야지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일나네.
갑석=그렇고 말고요 벌써 우리가 한 짓이라고 떠들고 있는데유.
수동=먼저는 실수 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서서 실수없게 할 것이니 염려마십시요. 과거일이 이제 일순도 못남았으니 웬만하면 몸때문에 올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수연=그럼 내 오늘 장에 나가서 그놈의 소식을 탐정해 오겠네(일어나 퇴장하면서) 그럼 내 다여 옴세
수동=형님! 꼭 부탁합니다.
갑석=아씨 잘 다녀오세유. 유련님 이러다가는 그 새악씨까지 재운이란 놈에게 빼앗기겠우다.
수동=이가놈에게 빼기다니 안될말이다. 그럴 양이면 그 연놈을 발기발기 찢어죽이지 그대로 둘줄 아느냐?
갑석=그러면 진사님께 아뢰어 정혼을 하도록 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읍니까?
수동=재운이란 놈과 수작한 년과 정혼을 하다니 그것은 안되!
갑석=그러면 어찌 하시렵니까?
수동=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고운 꽃이니 한번 꺾어서 희롱하다가 마음에 들면 첩으로나 들여 세우지.
갑석=도련님 그렇게 허술하게 생각할 처지가 못되옵니다. 그래도 양반으로 행세하는 반명가의 규수이온데 그럴양 이오면 소인 협조를 거절하겠읍니다.
수동=그러면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갑석=정혼을 하셔 정실로 모신다면 소인 재주를 부릴 것이오나 그렇지 않다면 동의 하기가 곤란하옵니다.
수동=허허! 네놈도 떼거지가 보통이 아니구나.
갑석=도련님! 생각해보십시요. 천상 천하에 재색을 겸비한 명문가의 규수이온데 남의 소첩으로 가다니 말이나 될 말입니까.
수동=네 말을 듣고보니 그럴듯 하구나 그럼 네 말대로 정실로 모시자.
갑석=그러시다면 소인이 힘을 다하여 성사 시키도록 힘스겠읍니다. 그건 그렇거니와 이번 과거에 응시를 못하시면 다음 기회라도 준비르 ㄹ하셔서 다만 진사 벼슬이라도 하셔야 하지 않겠읍니까?
수동=진사고 급제고 내겐 필요가 없다. 권세와 세도가 있는데 그깟놈의 것을 해서 뭘하느냐.
갑석=도련님은 항상 그런 대답이시지만 진사님께선 도련님의 출세를 고대하시니 어서 가서 공부나 하심이 어떠하옵니까?
수동=이 녀석아! 책은 덮어 둔제가 언제인데 이제서 책 얘기냐?
갑석=진사님께서 아시면 벼락입니다. 오늘도 도련님 공부 잘 하느냐고 물으시기에 밤을 낮삼아 공부에 열중하신다고 여쭈었는뎁시요.
수동=쉬! 저기 새악씨가 하나 이리오고 있는데 누군가 자세히 보아라.
갑석=틀림없는 그 새악씨입니다. 바구니를 들은 것을 보니 나물 뜯으러 나온 모양입니다.
수동=그 새악씨에 틀림이 없으렸다. 마침 잘 되었구나 가만 있지 그렇지(갑석의 귀에다 무엇이라 소곤거린다)
갑석=좋은수입니다. 그러면 숨읍시다(갑석 수동 서로 반대쪽으로 퇴장하여 숨는다. 어디에선가 뻐꾸기 소리 새 소리)
아녜스=(콧노래를 부르며 등장 손에는 나물 바구니와 몇송인가의 들꽃) 어여쁘기도 하지 이렇게 꽃이 고우면 향기도 곱거든 우리 인생도 이렇게 곱게 피었다가 곱게 죽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새소리 곱기도 하구나 하늘은 푸르고 무한히 넓지만 땅은 왜 이다지도 좁기만 할까? 꽃은 요렇게 아름다이 피어나고 새들은 자유로이 날으며 평화로웁게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해서 우리 인생은 이렇게 좁은 땅에서 묶이고 얽매여서 공포와 불안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아! 평화와 자유! 차라리 한 마리 새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콧노래를 부르며 퇴장 하려 하는데 수동이 갑석이 양쪽에서 나오면서)
수동=아가씨 안녕하시옵니까?(아녜스 깜짝 놀라 돌아서서 나가려 하는데 갑석이 나서며)
갑석=아가씨 안녕하시옵니까 오랫동안 못뵈왔읍니다.
수동=달님처럼? 고우시고 햇님처럼 빛나는 아가씨여!
갑석=우리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한번 뵈온 후로 오날까지 아가씨만을 사모하고 계셨으며 아가끼만을 위해서 살고 죽으려 하옵니다.
수동=이렇게 된 바에야 고집을 부리지마옵시고 제 마음을 받아주십시요.
갑석=아가씨 영웅도 때를 만나야 하고 꽃도 때가 돌아 와야 피는 법입니다. 때를 놓지면 사람도 세상에 나온 보람이 없이 헛되이 시드는 법이옵니다. 지혜가 밝고 총명하오시며 덕망이 높으신 우리 도련님의 뜻을 받아주옵소서.
수동=너무 수집어 마옵소서 제 뜻만 받아 주신다면 세상의 부귀영화 모두 아가씨의 발 아래 놓이게 됩니다.
갑석=현명하신 아가씨 잘 생각하소서. 더 이상 고집을 부리시면 신상에 해가 미칠 것이오며 더 나아가서는 집안에까지 화가 미칠 것이오니 잘 생각하옵소서.
아녜스=연약한 아녀자에게 무례한 일도 분수가 있지 이런 무예지사가 어디 있읍니까 더구나 양반의 신분으로서
수동=오라! 그래서 안되겠다. 그런 말씀이로군
아녜스=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아옵니까? 양반이면 양반다운 예의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소녀 이렇게 무례한 법은 배우지를 못해서 동의할 수 없읍니다.
수동=흥! 무례하다고 그래 너는 양반이라서 처녀의 몸으로 남의 총각 더구나 밤에 혼자서 병 간호를 하였구나 이 앙큼한 계집년 같으니!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좋다 내게도 좋은 수가 있다. 네가 증여 그렇게 고집하면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다.
갑석=아가씨! 이 무인지경에서 혼자 반항해도 수용없으니 고분 고분 아홉소서. 나비가 꽃을 찾아 왔는데 어찌 꽃으로서 마다할 수 있아옵니까! 마다 하온들 나비가 그대로 날아갈리가 있아옵니까?
아녜스=뉘댁 도령인가 무도불칙하오 비록 상민일지라도 이렇게 희몽은 못할 것이거늘 명문가의 아녀자에게 이렇게 무례한 행패를 할 수가 있읍니까?
수동=여봐라! 안되겠다 이 년을 끌고 저 산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