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市 NC】 아직 출판되지 않은 교황 요한 23세 집필 문헌에서 그의 젊은 사제시절과 주교재직시 그리고 터키외교관 당시의 영성을 말해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요한 23세의 집필실무담당자였고 개인 비서로 있었던 로리스 까뽀빌라 추기경(당시는 몬시뇰)에 의하여 발견됐는데 발견된 문헌은 교황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두장과 불원간 발행될 교황의 「일기」의 하나이다.
편지는 1935년 교황의 부친이 별세했을 때 집으로 보낸 것과 1939년 모친이 별세했을 때 보낸 것이며 일기는 교황이 이태리 북부 「베르가모」에서 군종신부로 있을 1917년 1월부터 3일까지의 것이다. 이 일기는 이미 발행된 「영혼의 일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1917년 3월 8일자 일기에는 자기방 부근에서 급성기관지염으로 죽어간 도메니꼬라는 19세 난 군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시골 소년은 천사와 같은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의 총명한 눈과 티없이 착한 미소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아침과, 저녁 그의 휘파람 소리가 내 귓전을 두드리며 지나갔다.
「죽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축복입니다. 내 영혼이 아직도 깨끗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주께 감사하며 죽습니다. 내가 만일 더 나이가 많아서 죽는다면 누가 알겠읍니까? 누가 알겠읍니까? 짐이 더 무거워질지? 처자식과 재산을 버리고 떠남을 더 괴로워할지 누가 또 알겠읍니까? 그러나 지금 죽어가는 제게 뭐과 값진 것입니까?」 조금전 내게 말하기를 「나의 마지막 호흡까지 완전히 천주께 속하기 위해 지금 존경하는 신부님 곁에서 숨을 거두기를 바랍니다」고 했다』 론깔리 신부(교황)은 대답했다.
『귀여운 도메니꼬, 나는 아직도 자네가 더 생존하기를 주께 빌고있다. 세상에도 신앙과 정결과 거룩한 그리스챤적 시(詩)를 발산하는 이런 선량된 깨끗한 영혼이 필요하다. 우리 신부들 역시 덕행과 신심을 북돋울 이런 영혼들이 필요하다.』
교황이 효자라는 것은 이미 출판된 저서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출판되지 않은 편지들에서 그가 단순하고 가족적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명백히 볼 수 있다.
첫번 편지는 부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35년 7월 29일 「이스탄불」에서 쓴 것이다. 당시 「터키」 주재 교황사절로 있을 때다. 『내 생애의 가장 큰 위로는 누구에게나 자랑하는 가족들이다. 그들은 가난하고 단순하며 겸손하고 선량하며 천주를 두려워 한다.』
4년후인 39년 2월 21일 어머니의 별세를 듣고 「이스탄불」에서 또 편지를 썼다. 『밤이나 낮이나 기도할때나 대화때나 일할때나 취침시간에 항상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말했다. 어머니는 멀리서 고생하시고 나는 이곳서 어머니를 생각하느라 고생한다. 「그러나 우리의 희생은 하나로 합쳐 누구에게나 축복을 나눠주는 주께 희생이 될 것이다. 어머니가 내게 가르쳐 준대로 한다면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