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音樂(성음악) 새 訓令(훈령)에 대한 小考(소고)
한국 최초 聖歌集(성가집)의 한 編纂者(편찬자)의 意見(의견)
外來曲(외래곡)에 번역歌詞(가사)를 붙인 우리 聖歌(성가)의 問題點(문제점)
旣存(기존) 곡에 歌詞(가사) 붙이는 難點(난점) 있고
곡의 「리듬」 살리면 歌詞(가사)가 無視(무시)돼
聖歌(성가), 모든 會衆(회중) 부를 가장 훌륭한 祈禱(기도)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결과 우리 가톨릭典禮에 많은 변동이 생겼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중에 하나는 성음악에 대한 훈령이다. 최근 한국 가톨릭중앙협의회에서는 이 새 훈령에 따라 지금까지 우리가 불러오던 성가에 대해 일대수정을 가하여 보다 훌륭한 것을 발표하리라고 한다.
그간 본 가톨릭시보 지상에는 이 분야에 전문적 조예가 깊은 분들의 여러가지 의견이 피력되었다.
어떤 이는 史的 입장에서, 어떤 이는 성음악의 전례상의 위치를, 또 어떤 이는 성음악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가짐을 - 여러면에서 피력된 줄 안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 한가지 더 언급했으면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한국가톨릭교회라는 특수사정에서 생겨지는 일이다. 즉 다시 말해서 성가집에 수록되는 성가는 그 거의 전부가 外來曲의 轉載와 歌詞譯編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난점이다.
물론 해당 분과위원 여러분께서 모든 것을 훌륭하게 수행하실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으나 과거 이 일에 다소나마 관련을 가졌던 필자로서는 이에 대하여 또한 관심되는 바 적지 않다.
필자는 음악 분야에 있어 어떤 전문적인 연구나 지식이 없는 일개 문외한에 불과하나 어떤 계기로 해서 지금으로부터 약30년전 아직 20대의 미숙한 나이로 우리 성가집 간행(刊行)에 관여한 바가 있었다.
당시 전국 주교회의에서는 그때까지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은 신약성서 서간편 번역 · 출판을 덕원 성분도대수도원에 위임한 바 있었다. 그리하여 동 수도원 출판부에서는 신학박사 아르눌프 신부님의 주재하에 이 중대하고 거룩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필자 또한 그 인원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동수도원에서는 그때까지 각 교구마다 제 나름으로 불러오던 성가를 한데모아 이를 하나의 성가집으로 편찬하여 발행할 것을 또한 위촉받았었다. 여기에는 독일 본국에서 음악을 전공한 신부님이 그 책임자이었고 필자는 그 가사의 譯編과 수정을 맡았던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 이 성가집 편찬에 있어 느낀바 소감을 오늘 다시 상기해봄이 무의미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원래 歌曲이란 먼저 歌詞가 있고 여기에다 어떤 작곡가가 곡을 주는 것이 그 순서라고 보겠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서의 성가는 그 순서가 바뀌었다.
즉 선후가 顚倒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 여기에 가사 편찬의 난점이 있는 것이다. 곡은 이미 주어졌고 이 곡의 「멜로디」와 「리듬」에 맞추어 가사의 字句를 - 그것도 散文이 아닌 노래 구실을 하게끔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曲의 「리듬」과 가사의 억양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이점에 특히 머리를 쓴다. 물론 우리말은 그 억양이 외국어와 같이 그리 심하지 않은 점이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를 무시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7·5調나 8·8조와 같은 우리말 노래를 보면 그 거의 전부가 頭音에 「액센트」가 오는 명사나 형용사, 또는 동사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完全小節로 시작되는 곡에 있어서는 그 「리듬」과 가사의 억양이 일치되기 쉬우나 弱音이 되는 불완전 소절의 끝음(末音)으로 시작되는 곡에 있어서는 이상 두가지가 잘 어울리지를 않는다. 이 점에 있어서는 외국어, 그중 독일어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액센트」가 없는 冠詞나 또는 前緣(接頭辭)이 여기에 오기 때문이다. 슈우베르트의 聯歌曲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소녀」 같은 것을 보면 아주 완벽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부르는 성가 중에는 이렇지 못한 것이 많다. 합송미사 경본 중에 수록되어 있는 제헌의 노래를 한 예로 들어보면 이를 알 수가 있다. 『이제 면병과(포도주)』 이를 리듬에 맞추어 나누어 보면 - 이(弱) 제(强) 면(弱) 병(小强) 과(弱) - 이상과 같이 되는데 이 다섯 音節이 「리듬」과 일치되려면 「1, 2, 2,」 음절로 나뉘어 세 單語로 이루어지든가 「1, 4,」 또는 「3, 2,」 음절로 나뉘어 두 낱말이 되든가 혹은 다섯 음절로 이루어지는 한개의 낱말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다섯 음절을 「리듬」을 따라 나누어 보면 『이∨제면∨병과』로 되니 본디의 말과는 다른 말이 되어 버린다. 즉 「리듬」을 바로 살려 노래를 부르면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다음 귀절 『성신께서 제물 위에』도 『성∨신께∨서제∨물위에』가 되니 역시 같은 결과가 생긴다.
노래의 가사야 그 구실을 하든 못하든 우리의 정성만 지극하면 그만 아니냐 한다면 더 말할 여지가 없겠으나 노래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理性이 主가 아니라 情緖를 주로하는 감정의 呼訴라고 본다.
사람은 이성으로 보다 감정으로 더 뜨거운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천주님께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즉 旋律도 좋아야 하겠지만 가사도 또한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필자의 욕심만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가 이제 거의 사라진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당시 사가 역편에 있어 느꼈던 한 · 두가지 난점을 예로 드는 것은 성음악 분과위원들의 앞으로의 성가 再整理에 있어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다.
퇴장의 노래 「천주여 네 권능과」에 대하여 - 이것은 본디 네 권세라고 되어 있었으나 권세라면 어딘지 모르게 俗된 것 같도 專制的인 느낌을 주므로 이를 권능으로 하였다. 그리고 그 후렴은 지금은 『시작이 없으시며』로 되어 있는데 필자는 당시 이 귀절을 『없음이여』로 하였다. 그것은 高音에 있어서는 <며> 보다는 <여>가 발성이 쉽고 소리가 이그러지지 아니하며, 또한가지 『시작이 없으시며』 하여 천주의 영원하심을 다만 敍述함에 그쳐 솟아오르는 내 감정을 잠시나마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시작이 없음이여』하여 천주의 영원하심을 기존한 진리로 承服하고 이 한 귀절을 「멜로디」의 고음에 얹어 내 감정의 영겁에의 飛翔을 期하여 다음에 오는 귀절에 연결시켰던 것이다.
또 한가지 성탄의 노래 - 「고요한 밤에 대하여」 - 이것은 지금에 있어서도 낯이 붉어짐을 금할 수가 없다. 내 딴에는 당시에 있어서 갓난 예수 아기를 가장 귀여웁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제한된 字句로써 어떻게 하다 그만 『귀연 금발의 천상아기』가 되고 말았다.
만백성을 한결같이 사랑하여 탄생하신 천주 예수 아기를 이런 말로 표현함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것 같다.
이상과 같은 예를 다 다르려면 한이 없겟기에 이정도 그친다. 다만 지난날에 부족한 머리로 저질러 놓은 필자의 잘못을 새로 임명되신 위원들께서는 훌륭히 고쳐 주시리라 믿을 뿐이다.
새 훈령에 의하면 전례에 있어서의 성가 演唱을 일부 성가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전체 참여자가 다 함께 부를 것을 권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3년전에 作故하신 前 원산본당 탁 신부님의 先見이 머리에 떠오른다. 30년전 당시 원산본당 주임이었던 탁 신부님께서는 성가야말로 가장 훌륭한 기도인데 성가대만이 부를 것이 아니라 예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같이 함께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원산본당에서는 60이 가까운 노인에서부터 6 · 7세의 유치원 아동에게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다 성가책을 손에 들고 제각기 목청을 가다듬어 성가를 소리 높이 불렀던 것이다.
음악은 언어가 있기 전부터 있었다고 보고 싶다. 原始人의 경우 혹은 그 어떤 슬픔을 당했을 때 오늘의 前述音樂에 비슷한 그 어떤 奇聲을 - 妄言多謝 - 올렸을 것에 틀림이 없다. 말문이 아직 열리지 않은 乳兒들도 마음이 흐뭇하면 무어라 중얼거리고, 아름다운 음앇고리를 들으면 우줄거린다. 아직 미개한 종족들도 그들의 神에게 제사를 올릴 때는 그 제단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들어서 알고 있다.
이와같이 음악이란 필자 같은 문외한이 운위(云謂)할 것 없이 인간의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인상 싶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물의 창조주이신 천주님을 찬양함에 있어 이를 노래에 의탁하고 싶어함은 의당한 일이며 따라서 이 노래를 보다 훌륭하게 만들어야 하겠다는 것도 또한 당연한 일이다.
김 분도(가톨릭구제회 부산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