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꽃들 (8)
丙寅殉敎紀念(병인순교기념) 10萬圓(만원) 戱曲當選作(희곡당선작)
발행일1967-07-09 [제576호, 4면]
갑석=(아녜스의 바구니를 뺏으며 능글맞게) 아가씨 잘 못하면 처녀의 몸에 수모를 당할 것이오니 잘 생각하옵소서
아녜스=(새파랗게 질려서 그러나 침착히) 여보세요 아녀자에게 폭력을 씀은 비굴한 소행이요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고 예의범절이 있는 법이 아니오니까 도련님께서 정말 현명하시고 명문가의 덕망있는 분이시라면 길거리에서 오다 가다 만나는 상민들처럼 무례한 일을 할 수야 있읍니까!
갑석=과연 지당하온 말씀입니다.
아녜스=예의와 절차를 밟아서 일을 하신다면 소녀 어찌 거절하겠읍니까? 종이나 상민이 아닌 몸으로 어찌 예의범절을 거스리는 일에 동의할 수가 있겠읍니까?
갑석=과연 절개 있고 현명하시고도 예의다운 말씀이로다.
아녜스=도련님이 정말로 현명하시고 덕망이 있는 몸이시라면 모든 일을 예의범절을 따라 처리하옵소서 사리와 의리에 맞는 일이라면 소녀 어찌 거절하겠읍니까?
갑석=얼굴만이 일색인줄 알았더니 그 말씀을 듣고보니 과연 천상천하에 비할데 없는 재색겸비의 절세 여장부로소이다.
수동=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오.
아녜스=사나이 대장부가 자기 할 일을 몰라서 남에게 묻사옵니까?
수동=(머리만 긁으면서) 갑석아! 네 의견이 어떠하냐?
갑석=과연 아가씨 말씀이 지당하고 천당하고도 만당한 말씀인줄로 아뢰오
수동=(어찌할 바를 몰라서 머리만 긁으며) 갑석아!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갑석=(머리를 긁적이며) 글세올시다. 말씀은 지당하오신대 생각에 안개가 끼어서 갈길을 찾지 못하겠나이다.
수동=무엇이라고(이때 박노인 할머니 괭이와 호미를 들고 소리지르며 등장한다)
박노인=어느놈이 우리 아기를 희롱하느냐?
할머니=이 고이헌 놈들 게 있거라!
갑석=이크! 도련님 안되겠읍니다.
수동=오늘도 재수없이 걸렸군 가자(둘이 급히 퇴장 박노인 그 뒤를 쫓아 가면서)
박노인=이 부쌍놈들아 게 섰거라
아녜스=(할머니 가슴에 안기며) 할머니
할머니=대체 어느 쌍놈의 자식들이냐 온천하에 별꼴을 다보겟구나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아녜스=할머니 성모님의 보호하심으로 위기를 면했아와요
할머니=밭을 매다 보니 네가 욕을 보는 것 같아서 뛰어왔단다(서서이 퇴장 하면서) 영감님! 그만두셔요
아녜스=할아버지! 그만 돌아오세요 (둘이 퇴장하면서 막)
■ 제3막
때=2박으로부터 수일후
곳=박노인의 오막집
노인은 뜰에서 새끼를 꼬고 할머니와 아녜스는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박노인=박해가 날로 심해 가니 큰 일이로구나
할머니=살 날도 며칠 안남았는데 천주님을 위해서 치명할 각오나 합시다.
박노인=우리 아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그러오 양친 다 돌아가시고 언니는 치명하고 오라버니는 신부님을 뫼시고 다니고 이것 혼자인데 어데다 맡겨라도 놓고 죽어야 눈이 감길 것 아니오.
아녜스=할아버지 조금치도 소년 걱정은 마셔요 소녀 각오한 바가 있어 출가하지 않고 소녀도 언니를 따라 치명하기로 성모님께 맹서하였으니까요.
문수=(다급히 뛰어오며) 할아버지!
박노인=아니 웬일이오?
아녜스=오빠! 무슨 일이 있어요?
문수=큰일났읍니다. 서울에서 포교들이 전국에 내려닥쳐 교우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있읍니다.
박노인=신부님께선 안전하신가?
문수=그래서 지금 신부님과 교우들을 피난시키려 오는 길인데 포졸들이 뒤를 따르고 있읍니다.
할머니=그럼 빨라 가게나
문수=그럼 못뵈옵더래도 부디 몸 조심들 하세요. 아녜스야 너도 할아버지 할머니 말 잘듣고 잘 있거라(퇴장)
박노인=그럼 몸 조심해서 잘 가게
할머니=잘 가오
아녜스=오빠!(모두 문수를 배웅하고 마당으로 을어 오면서)
박노인=아무래도 죽을 날이 가차와 오나보오 치명할 준비나 합시다
할머니=영감! 저기 보세요 포졸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박노인-여보 당신은 애기를 데리고 뒷솔밭으로 숨으시오.
할머니=부뜰리면 함께 부뜰려 죽지 나혼자 살아서 무얼하겠오.
박노인=애기 때문에 그러니 어서 피하시오 어서 급하오(할머니 아녜스 부엌으로 나가며 마당으로 포졸 A·B·C 등장하면서)
포졸A=주인장 계시오
박노인=거 누구시오.
포졸B=저 말씀좀 물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