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꽃들 (9)
丙寅殉敎紀念(병인순교기념) 10萬圓(만원) 戱曲當選作(희곡당선작)
발행일1967-07-16 [제577호, 4면]
포졸C=여기 수상한 젊은놈 지나가는 것 못보셨오.
박노인=조금전에 덕산읍 저쪽으로 지나간 인적은 있었오만 왜들 그러시오.
포졸A=어서 추격하세
포졸 B=틀림없이 이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본 것 같은데
포졸C=그냥 두세 숨가빠 더 쫓아갈 수도 없고 가면 제깐 놈이 얼마나 갈려고 좀 쉬어서 물이라도 마시고 가세
포졸A=이러다간 양놈은 고사하고 쥐새끼 하나도 못 잡겠네
박노인=날도 더우니 좀 쉬어들 가시오
포졸B=숨이나 좀 돌리고 가세
포졸C=우리 전술을 바꾸어야지 이렇게 백날 다녀도 천주학꾼 하나도 못잡겠네(모두 마루에 앉으며)
포졸A=그것도 좋은 생각이여.
포졸B=그러나 저러나 이놈의 노릇도 못해먹겠어 천주학문 때문에 고생도 고생이지만 참아 꽃다운 처녀들이 죽엄을 술마시듯 하니 그꼴을 볼 수가 있어야지(모두 담배를 피워 물고)
포졸C=최서방이 독하다더니 천주학쟁이에겐 비교도 안되거든
박노인=(그동안 부엌에 나가 물을 떠다 주면서) 자! 물들이나 마시며 말씀들 하십시요. (다시 앉아 새끼를 꼰다)
포졸A=예! 영감 고맙소(돌려가며 마신다) 이 사람들아 그러구 저러구 조무레기 천주학꾼 많이 잡아도 죽는 것만 보기 싫고 그 양놈이나 잡아서 상금이나 타 보세.
포졸B=그것 참 좋은 생각일세 호랑이도 호랑이 굴에 가야 잡는다고 우리 모두가 천주학군이 되어 보는게 어떤가
포졸A=양놈이 공주땅으로 갔다는 소식은 알았으니 천주학꾼을 찾아서 서울에서 중요한 열락이 있어왔으니 만나자고 하면 어떨까? 가다가 모두 변장을 하고 말일세
포졸B=그것 참으로 좋은 공상이기는 한데 그 놈들이 보통 약아야 말이지 게다가 천주학꾼 노릇을 할려면 천주학에 대해서 무엇을 알아야 할게 아닌가
포졸C=그렇지 무작정 나 천주학꾼이요 한다고 그 놈들이 속아 넘어갈리가 있나
포졸 B=하긴 그렇군
포졸A=천주학에 대해선 나으리가 좀 알고 계시네 서대문 감영에서 천주학꾼들에게 배워둔게 있거든 그러니 나으리 하라는 대로만 하게
포졸B=일이 잘 될라면 손발이 척척 잘 드러맞는단 말이야
포졸A= 천주학꾼이 되려면 우선 인사말부터 배워야 하며 인사는 찬미 예수 마리아 자! 애보게
포졸B=찬미 예수 마리아!
포졸A=그 다음엔(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그다음이 무엇이드라 오라 성녀와 비나이다 아멘
포졸BC=흉내는 내며 성부와 성자와 성녀와 비나이다 아멘
포졸A=그 다음엔 말일세 천줗가문은 영세라든가 세례라든가를 받거든 그때 괴상한 이름을 붙여서 저희들끼리는 그 이름으로 부른단 말이야 그러니 저놈들이 수상하면 당신 세례를 받았오 하고 묻거든 받았노라고 하면 이름이 무엇이요 하고 또 묻는단 말야 그때 그 이름을 모르면 가짜가 탄로난단 말일쎄
포졸B=그 이름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포졸A=이사람아! 얘기나 들어 봐 우리 조선 사람의 이름이라 여간 까다롭지 않네 무엇이라드라 그렇지 사발 방울 마리아 그리고 골롬방 요강 고래고기도 있고 실버들도 있지
포졸C=그것 참 괴상한 이름이군
포졸A=그럼 우리 천주학꾼 이름부터 하나씩 지어보세.
포졸B=나는 마리아 까마귀 정신이라 그렇게 까다로운 이름은 소용없고 쉬운 것으로 하여주게. 워라했지. 골방의 요강이라 했나.
포졸A=골방의 요강이 어디있나. 그런가야. 조선에나 있지. 서양에도 있는줄 아나 자넨 쉬웁게 마리아라고 하게.
포졸B=마리아라 그것 희안하군
포졸C=나는 말일세. 실버들이 좋겠네.
포졸A=실버들이라 그것 참 멋있군
포졸B=여게 그럼 능수버들도 있나
포졸A=이 사람아 능수버들이야 천안삼거리에나 있지. 서양에도 이는줄 아나
포졸C=그럼 자넨 무얼로 하려나
포졸A=나으리야 덩치가 크니 고래고기로 하지
포졸=그럼 자넨 마리아 나는 실버들 그리고 자넨 고래고기렸다
포졸A=그리고 모든 일은 나 하라는 대로만 하게 이제 가다가 예산 고을에 가서 모두 변장을 하고 천주학을 좀더 공부하고 가세
포졸B=그럼 그만 예산 고을로 가세 영감님 잘 쉬여갑니다
포졸 A·C=영감님 잘 쉬어 갑니다
박노인=별 말씀을! 안녕히들 가십시요.
(서로 인사하고 헤어진 후 부엌문을 열고) 여보? 여보!
할머니=(「아녜스」와 마주 나오며) 어찌 되었어요
박노인=그 놈들이 공주로 신부님을 잡으러 가는 모양인데, 오늘은 예산고을에서 쉬어 갈 모양이니, 우선 안심은 되는군요.
할머니=임자 없는 양들을 위하여 수만리 타국에서 오셔서 고생하시는 것만도 안타까운데 그 놈들에게 체포되어 악형을 당하시고 치명까지 하신다면 우리는 무슨 면목으로 살아가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