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話題(화제) 남긴 名市長(명시장) 끼르 神父(신부) 無視(무시)했던「늙음」끝내 못이겨
드골 曰(왈)「수단 입은 촌놈」이라고
2次戰(차전) 抗爭(항쟁) 英雄(영웅)‧死刑宣告(사형선고)까지
미사後(후)엔 交通巡警(교통순견) 돕기도 하고
拳鬪師範(권투사범)·話術家(화술가)·20年(년) 議會(의회) 生活(생활)
【디죵·프랑스 NC·RNS】 프랑스 「디죵」시 의장이었으며 국내에서 가장 다채로운 종교적 정치적 경력을 가진 사람중하나였던 까농·휄릭스·끼르 신부가 자택층계에서 넘어지면서 받은 머리의 상처로 지난달 25일 「디죵」시의 한 병원에서 향년 92세로 숨졌다.
제2차 대전시의 전공으로 시민들의 전적인 지지를 얻어 「디죵」시장으로 당선된 이래 24년 동안 시장직을 맡아온 끼르 신부는 드골에겐 「수단 입은 촌놈」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눈의 가시」격이었지만 헝클어진 백발과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 신부복과 입심좋은 언변으로 불란서 의회에서도 알아주는 존재였었다. 그는 작년 3월 총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들기까지 20년간 국회의원생활을 해왔다.
끼르 신부는 1960년 당시 소련수상 후루시초프를 「디죵」시로 초대한때부터 국제적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후」 수상은 초청을 쾌락하여 「디죵」시를 방문했으나 끼르 신부는 주교로부터 냉전이 고조된 당시로는 소련 수상을 만난 다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는 충고를 듣고 그날 시를 떠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동년 5월 미·소 정상회담 이후 「후」 수상을 「빠리」 주재 소련대사관으로 찾아가 반시간동안 담화하여 끼르 신부는 세계2차대전시 「레지스땅스」의 영웅으로 활약했으며 양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정부로부터 「무공 십자훈장」도 탔다. 2차대전시에 제는 독일인들에 의하여 사형선고를 받고 57일 동안 감옥에 있었으며 나중에는 「나치」에 의해 심한 부상을 입었다.
무엇보다도 끼르 신부는 「디죵」시에서 생산되는 흑색 건포도와 백포도주를 섞어 만든 「유쾌한 반주(飯酒)」라는 술의 발명가로 알려졌으며 청년시절엔 권투사범을 하기도 했고 일요일아침 미사 후엔 「디죵」시의 교통순경을 도와 교통정리하기를 무척 좋아했다.
고집 세기로 유명한 끼르 신부는 안경을 쓴다는 것은 「늙음」에의 항복이라고 하여 안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집안에 있는 가구들에 부딛쳐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얼마전에 그는 65세난 어떤 인사를 부시장후보로 지명하기를 거절했는데 이유는 『그는 너무 늙었어!』였다.
가난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난 끼르 신부는 특히 화술(話術)에 능하였다. 어느날 어떤 이가 『당신은 신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으나 우리는 신을 볼 수가 없소. 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시오』하고 요청하자, 끼르 신부는 『당신은 나의 뒷등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끼르 신부의 임기는 1971년에 끝나기로 돼 있으나 그만 「늙음」에 항복하여 숱한 화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