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한적한 과수원 울타리에 탱자꽃이 필 무렵이 면 어머니의 달, 여인의 달인 5월이다. 이 탱자나무는 어쩐지 여인의 운명을 상징하는 나무 같다.
탱자나무의 짙푸른 까시는 마치 여인의 숙명적인 고통을 상징하는 듯하며 청초한 흰탱자꽃은 여인의 무구한 사랑의 기쁨이라면, 먼 훗날 황금 공같이 주렁주렁 열릴 탱자열매는 여인의 자랑스러운 희생의 결실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탱자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노라면 문득 하얗게 뻗어나간 길위로 살아져간 듯한 한 여인의 슬픈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것은 그녀가 불던 트롬벳의 멜로디와 함께 떠오르는 영화 「길」의 주인공 제르소미나다. 제로소미나는 엉터리 요술사 잠파노의 어릿광대이자 마누라이기도하다.
「페이소스」가 깃든 그의 얼굴은 화장없이도 바로 「삐예로」 자체일 만큼 우스꽝스럽고 그것은 무구하면서도 기교예찬 이상한 아름다움이 있다. 잠파노의 그 파렴치한 학대와 유린은 바로 이 세상 모든 죄악과 강자가 약자한테 대한 횡포의 상징 같다. 어느날 그녀는 잠파노가 경찰에 붙들려간 후 곡예사인 한 청년과 함께 길을 걸으며 이런 뜻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들의 신세는 마치 길거리에 무심히 굴러있는 이 돌맹이 같군요. 대체 우리 같은 이런 人生에도 무슨 뜻이 있을 까요?』
『정말 우리들은 이 돌맹이 처럼 허잘 것 없는 인생인지 모르죠. 허지만 이 작은 돌맹이는 이 돌맹이 대로 단한번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존재가 이 돌맹이를 대신할 수 있겠읍니까? 따라서 이 돌맹이는 어떤 다른 보석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우리대로의 한번밖에 없는 이 삶의 뜻을 충실히 채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르소미나는 이 기회에 자기를 동정하고 이해해주는 이 곡예사를 따라 감으로써 잠파노로 부터도 망칠 수 있었으나 감옥에서 나온 잠파노에겐 그녀가 필요한 것을 알기 때문에 끝내 떠나지 못한다. 드디어 그녀는 잠파노에게 끌려 다니며 갖은 학대 끝에 병이들자 버림받아 거리에서 홀로 죽어갔다. 이 제르미나는 바로 인간구원을 위해 자신을 완전한 희생의 제물로 바친 예수그리스도의 상징이며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여인상의 극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교여인상의 궁극의 표상인 성모마리아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제르소미나는 지적으로 거의 백치에 가까운 보잘 것 없이 단순하고 연약하며 남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외롭고 가엾은 그런 종류의 여성의 표본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지성이나 의지력으로서가 아닌 여성 본능적인 애정과 지혜로서 인생의 깊이를 터득하고 마지막으로 그렇게도 비정적이고도 무지한 잠파노를 뉘우치게 하고 구원한다.
제로소미나야 말로 『이 세상엔 필요없는 인생이란 없다』는 이 진리를 어떤 유식한 현자나 철인보다도 순수한 인간 사랑의 본능으로 깨닫 있는 것 같다. 또한 그녀 자신 허잘 것 없는 여인임을 자처하지만 인간으로서 극한의 고통과 모별도 감내할 수 있는 용기와 선의는 어떤 지력이나 의지력이기 보다 차라리 맹목적인 여성의 사랑에서 울어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실로 현대 여성만큼 여성의 지위나 인간적 역량이 확대되고 평가된 시대도 없다. 여성들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남성들에 조금도 손색없는 독자적이며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현대만큼 여성의 기능과 가치를 여성의 육체적인면 즉 「섹 스」로 강조하고 아필시킴으로써 한갓 향락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시대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볼때 과연 현대에 있어 여성의 인격적 지위나 가치가 과거에 비해 보다 존중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대 여성이 제아무리 독자적인 개성이나 자유를 부르짖고 사회에 있어 외향적 능력이나 가치를 인정받고, 사실 그러한 가치는 인간으로서의 여성 본질적인 의미에서도 타당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할지라도 보다 여성 고유의 근원적인 속성인 모성적인 완전성과 주체적이기 보다는 보충적인 존재로서의 여성가치를 이탈하고 무시하고서는 여성은 남성과 상대적인 뜻에서의 여성으로서뿐 아니라 그들이 구하고자 하는 독자적 인간으로서의 가치나 자기 구원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가 『여성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고 했지만 결국 여성이란 자기 본연인 여성을 떠나서는 완전한 인간을 시현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차라리 여성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먼저 여성이 되라』고 하고 싶다. 『여성은 사랑하는 것 자체를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사랑이 인간에 있어 가장 가치있고 우월한 속성이며 소질이라 할진대 여성은 이처럼 누구보다 인간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여성은 스스로 생의 원동력인 사랑을 발휘하지 못할때 생존의 안정성을 잃고 생활의 매력을 잃는다. 더구나 여성은 자기 삶의 진정한 뜻을 겸손되이 감수하지 못하고 자기 능력을 과시하거나 이기심을 발휘할 때 그녀의 생의 샘터는 매말라 세상에서 한갓 가련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작가 알더스·학스리는 『여자란 교양이 있을지 몰라도 보편적 진리나 객관적 지식이 무언지 모른다』고 말했는데 여기 대해 영국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대답한다. 『…허지만 여자는 인생의 신비를 직관하고 생의 샘터를 발견함으로써 인생을 윤택케 하는데는 남자보다 탁월하다』
김영환(대구가톨릭 악숀협의회 지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