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13) <第一話(제1화)> 나를 만나보시려면 ⑬
발행일1968-05-19 [제619호, 4면]
『집으로 먼저 가라니까 왜 따라 왔느냐?』
승재는 아들의 조그만 손을 찾아서 부드럽게 쥐었다. 막내아들은 생그레 웃었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비록 나이 어리나 영리한 아이었다. 성당에서는 복 사를 서고 신부님의 심부름도 잘하여 귀염을 받고 있었다. 그는 말로 나타내지는 못하지마는 아버지가 성당에 와서 앉은 것을 보고 대단히 기쁘고 대견스러운 눈치가 분명하였다.
그리고 또 공연히 조심스럽고 불안스럽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버지가 성당에 가는 눈치를 채고 처음에는 모른 체하려고 했으나 어쩐지 조심스러워서 기엏고 따라온 것이었다.
성당 안에는 시시각각으로 어둠이 밀려들었다. 안보다 밖이 밝다가 차차로 안이나 밖이 똑 같이 어두어져 갔다. 성당 안은 고요한데 어둠이 서려 들며 제단위의 성체불이 더욱 붉게 빛나고 있었다. 승재는 말없이 제단와 성체불을 바라보았다. 곁에 막내아들을 앉히고 있으니 더욱 그 성당 안이 친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제가 견딜 수 없게 그리우시거든 성당으로 오세요.
저를 만날 곳은 거기 밖에 없어요>
아내 은희는 이렇게 말하고 죽은 것이다. 그러나 참말로 이 성당에 오면 죽은 아내를 만날 수 있을가? 물론 지금 승재가 성당에 와서 앉은 것은 그 유언의 실현을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기대할 수도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승재는 성당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차차로 어둠에 덮여가는 성당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포근히 얼싸 안는 듯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웬일일가? 성당이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건물에 불과하다. 거기 꾸며 놓은 여러가지 장식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승재에게는 그것이 그냥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구석구석이 죽은 은희의 체취가 느껴졌다. 승재가 무심한 동안에 은희는 여기에 온 목숨과 마음의 핵심을 걸고 생활했으며 그것을 가슴에 고이 간직한 채 저 세상으로 떠나간 것이다.
그리고 떠나면서 승재에게 유언을 남긴 것이다. 이제 승재에게 있어서 이 장소는 무심할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거기에는 색채가 생기고 냄새가 풍겨지고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비록 현실과 같이 은희의 모습이 보이고, 음성이 들리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지는 못해도 거기서 은희를 느낄 수는 있었다.
(왜 진작 여기에 올 생각을 하지 못했던가!)
승재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은희가 살아 있을 때 내가 여기에 함께 오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은희를 사랑하면서도 그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보지 않고 지낸 셈이 아닌가.)
승재는 갑자기 쓸쓸한 생각이 들어서 곁에 앉은 막내아들의 조그만 손을 더듬어서 또 꼭 쥐었다.
『아버지!』
『왜?』
아들은 불러 놓고 말이 없었다. 말 할 일이 있어서 부른 것이 아니었다.
손에서 느끼는 아버지의 체온을 통하여 흐뭇한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그냥 생그레 웃었다. 성당에서 이렇게 다정하게 아버지를 만난 것이 한없이 기쁜 것이었다. 승재도 그것을 알고 그 이상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교섭은 이미 말이라는 형식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런데서 말이란 무력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말은 물러가고 침묵이 지배한다. 승재는 짙어가는 어둠속에 아들과 함께 그대로 앉아 있었다. 조금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거기는 승재가 지금까지 생각한 대로 종교를 상징하는 건물이 아니고 순간과 영원이 맺어지는 신비롭고 숭고한 다리었다. 그러므로 지금 승재에게 있어서 그 집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녁 미사도 끝난 뒤이고 마침 저녁 무렵이다. 성당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승재는 제단 위 벽에 걸린 커다란 십자고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빛을 발하며 껌벅거리는 붉은 성체불을 바라보았다.
(참말로 여기서 은희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가?)
순간, 승재는 이런 생각 이 일어났다.
(지금도 은희는 여기에 나타나 나와 자기의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런 것을 나만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마치 지금까지 이 성당이라는 존재를 가뭇같이 깨닫지 못하고 지낸 것이나 마찬 가지로…)
이렇게 생각하고 승재는 새삼스러이 성당 안을 자세이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바다처럼 텅빈 좌석에 자기와 어린 아들만이 앉아 있었다. 승재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은희의 얼굴을 생각해 보았다. 벌써 까마득이 먼 옛날처럼 기억에 흐려져서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떴다. 그리고 왼쪽 샛문을 바라보았을 때 승재는 갑자기 온몸의 피가 순환을 멈추는 것을 느끼었다. 거기 분명히 한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둠이 서리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마는 그 몸매와 얼굴의 윤곽으로 보아 영낙없이 은희였다.
『여보!』
승재는 하마터면 이렇게 큰 목소리로 부를 뻔하였다. 그러나 부르기 전에 그 모습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버지 왜 그래?』
아들이 아버지의 태도가 이상해서 물었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승재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나 등에 가벼운 전율을 느끼었다. 헛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잠시 착각을 일으킨 것이 분명하였다.
『아버지, 인제 그만 집에 갈까?』
아들이 갑자기 근심스러운 듯이 말하였다.
『그래 인제 그만 집에 가자.』
그러나 승재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샛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 실망을 느끼며 오른편 창문을 바라보자 승재는
『앗!』
하고 소리칠뻔 했다. 거기 분명히 여인의 모습이 보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