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와서 초창기에는 모두 긴 여행에 지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연구하느라고 다른 생각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애들은 손바닥만한 땅덩이 위에서 우글거리다가 매 세대당 배정된 약 3천평의 드넓은 대지에서 맘껏 맑은 공기를 마시며 뛰노는 맛에 그저 좋기만 했다.
낯선 곳이긴 하였지만 우선 가슴을 펴고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국의 이민들은 모두 즐겁기만 하였다. 누구 하나 세금을 내라고 성화대는 사람도 없었고 손톱만한 일을 가지고 성가시게 구는 귀찮은 존재도 없었다.
공기 좋고 기후 좋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산따 마리아」 농장은 이름 그대로 성모 마리아의 품안에 안긴 기분이었다.
환경이 바뀐데 대한 흥분과 드넓은 평야에서 맛보는 이국적인 감상에서 차츰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밀어닥치는 향수의 강렬한 작용은 잠시 동안의 흥분과 감상을 멀리 쫓아내고 말았다.
젊은 학생들은 괭이를 잡고 일할 수 없다면서 도회지로 빠져나갔고 부인네들은 차츰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민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적어도 중류 이상의 생활을 해오던 사람들이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는 미개척지대에 동그마니 내던져진 채, 자신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니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번 비장한 결심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도시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내가 뭐 농사꾼인가?』
『객지에 나와 돈떨어지니 정말로 구슬프고 가련하구나』
『이런 구석에 와서 사니 자식들 교육을 시킬 수가 있어야지』
『난 전기 수도 없인 못살아』
『기껏 돈버리고 여기까지 와서 괭이자루 삽자루 잡아야만 살 수 있단 말야? 그럴바에야 우리나라에서 좀 더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지 않나…
등등 불평이 나오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하나 둘씩 빠져나가 「산따 마리아」 농장은 이제 주인 잃은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다.
처음 이민 이야기가 낫을 때 그렇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기대가 컷떤 브라질 정부와 현지 주교들은 차츰 한국이민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되었고 급기야는 이민사업을 중단시키라는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기운이 표면화하여 지금은 이민중단상태에 머무르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확고한 기금을 세워가지고 진짜 농사꾼을 보내는 방향으로 나가야만 국제적인 위신을 되찾고 원래목적했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까지의 이민정책은 『어떻게든지 내보내기만 하면 먹고 살 길이 있다』는 주먹구구식 방법이었다고 본다.
이 기회에 당국자들의 각성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張大翼(이민 지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