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神論(무신론)과 對決(대결)키 위한 하나의 神學(신학) ⑨ 六, 豫言的(예언적) 및 永世論(예언적) (終末論的(종말론적)) 肯定(긍정)
敎會救世活動(교회구세활동)을 위한 原則論的(원칙론적) 假說(가설)로서
神(신)은 하나의 問題(문제) 아닌 神秘(신비)
信仰(신앙) 어떤 根本的(근본적) 轉向(전향) 意味(의미)
福音(복음), 人間(인간) 미련 끊고 새 세계로 이끌 수 있어야
발행일1967-08-06 [제579호, 4면]
우리는 지금가지 現代無神論을 싸고도는 여러가지 社會學的 心理學的 與件을 分析하면서, 이러한 밭에 福音이라는 씨앗을 뿌리기 전에 먼저 이 밭의 整地作業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소묘해 보았다. 여기에 보면 神을 肯定한다는 것은 곧 神의 부름에 人間이 應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神을 肯定하면서 「예」하고 나서는 우리의 이 대답도 결국은 좀더 높은 次元에로 넘어가는 하나의 過程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의 眞理는 우리가 전혀 豫想하지 않는 곳에, 바로 이 神의 肯定을 超越하는 곳에 불끈 솟아나는 때문이다.
筆者는 어쩌면 가장 重大하달 수 있는 이 마지막 部面을 强調하고 이 글을 맺고저 한다.
■ 하느님의 부르심과 人間의 選擇
가브리엘 마르쎌의 表現을 빌린다면, 神은 하나의 問題가 아니고 하나의 「神秘」라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神은 내 앞에 서 있는 어떤 「對象」, 내가 마음대로 차지할 수 있는 「所有物」, 그 現存을 나의 感覺으로 確認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절대로 아니다. 하느님은, 그 분 자신이 存在를 준 被造物들 위로 번져들어오는 神秘이며, 나는 바로 이 神秘 안에 「存在」하고 있으며 이 神秘의 存在如否는 나의 삶을 根本的으로 뒤바꿔놓는다.
달리 말하면 神을 믿는다거나 안믿는다는 태도는 반드시 어떤 선택, 따라서 어떤 「全幅的向心」, 어떤 근본적 轉向을 內包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블롱델(M. BLONDEL)은 辨證法的 性格을 띠고있는 人間行動이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決定論的法則에 의해서 決定되는 것 같아도 사실은 兩者擇一을 避할 수 없는 「唯一의 必然者」 앞에서의 態度 여하에 달려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 「唯一의 必然者」란 다름아닌, 바로 우리가 하느님과 더불어 神이 되든지 아니면 하느님 없이 神이 될 것을 반드시 選擇해야 하는 「딜렘마」이다.
敎會는 無神論에의 이와같은 接近方法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하느님이 말씀은 그 豫言的 性格을 十分 發揮하게된다.
그런데 이 예언적 性格과 의미를 십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우리의 미련과 작별케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거기에서 우리를 잡아 끌어내어 우리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 바오로 종도가 말하듯 『우리의 귀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우리의 눈이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우리 마음 안에 한번도 떠 오른 적이 없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르 ㄹ이끌어 넣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착오를 해서는 안된다.
하느님의 말씀의 이렇듯한 「새로움」 이렇듯 새롭고도 意外인 이 말씀의 충격은, 그것이 어길 수 없는 매력으로 우리를 새로운 자유에로 불러내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으로 하여금 그 모든 재산을 떠나지 말도록 교사하는 온갖 반항의 힘들을 동원케 하는 계기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