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敎會史를 通해서 1517년 가톨릭敎會에서 소위 新敎가 이탈해 나감으로써 敎會 音樂이나 一般藝術音樂에도 매우 큰 變化를 가져오게 했다.
音樂이 敎會典禮에서 지극히 重要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주지의 事實이지마는, 가톨릭敎會에서는 훈련된 合唱團에 의해서 聖이 노래 불리워지는데 대해서 新敎에서는 찬송가를 제창해서 이를테면 모든 信者가 함께 禮式에 참려한다는 형태를 취했다.
또한 가톨릭교회에서는 「미사」의 진행에 맞추어 「미사曲」이 큰 意味와 重要性을 가지는데 대해서 新敎에서는 그들의 母國語로써 作曲해서 이를테면 國民的 自覺이란 것이 前面에 나타나게 된다.
미사曲의 構成은 라띤語로 되어있으며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천주께 영광」 「나는 믿나이다」 「거룩하시다」 「천주의 어린양」의 5部로써 되어있다.
中世의 거의 모든 作曲家는 이러한 構成으로 된 미사曲을 作曲했으며 例컨데 「팔레스 트리나」를 最高봉으로 한느 中世의 作曲家는 말할 것도 없고 「하이든」 「모짜르트」 「베에토벤」 「슈우베르트」 등의 樂聖들의 作品은 敎會에서 또는 演奏會場에서 널리 불리워지고 있다.
가톨릭신자인 作曲家가 대개 「미사曲」을 作曲했는데 比해서 新敎의 作曲家는 새로운 樂曲形態를 발명했다.
例컨데 「바하」는 매주 자기가 속해있던 「聖 토마스」 교회 合唱團을 위해서 「敎會 칸타타」 「오라토리오」 「受難曲」 등을 作曲해서 傳統的인 敎會音樂에서 離脫해서 새 時代의 感情을 담았던 것이다.
현재 우리들은 공의회가 새 時代의 狀況에 處해서 결정한 바대로 우리들의 聖歌 - 우리들의 祈願을 가장 親近한 表現 수단인 우리말과 韓國音樂의 特性을 살려서 作曲하고 歌唱할 時代的 要請을 받아들여야 할 때에 놓여있다.
韓國의 기독교(新敎)에서는 19세기 중기에 작곡된 미국찬송가를 무비판적으로 우리말로 옮겨 노래 부르고 있으며 가톨릭교회에서는(특히 서울교구 大邱교구) 主로 프랑스 이탈리아계통의 성가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音樂史에 있어서는 宗敎音樂을 作曲家 자신이 속해있는 民族과 時代의 감정을 바탕으로 해서 作曲한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過去 우리들은 西洋音樂의 技法을 通해서 聖曲을 作曲하기에는 너무나 미숙한 狀態에 있었고 또한 「西洋的」인 것이 가장 좋다는 盲信에 사로잡힌 점이 없지 않았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들의 生活感情을 통해서 傳統的인 우리의 言語와 音樂의 特色이 훌륭이 살려진 새 時代의 「우리 聖歌」를 미사때 노래부르는 運動을 展開해야 될 것으로 믿으며 가톨릭 音樂家는 여기에 대한 協力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 끝 -
김진균(啓明大 音樂科 主任 · 哲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