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信者(비신자) 記者(기자)가 본 오늘의 敎會(교회)
日刊新聞(일간신문)서의 宗敎問題(종교문제) 比重(비중)
現代(현대) 바람 内部(내부)에도 파문 던져
救援使命(구원사명) 倍增(배증)
科學(과학)·物質(물질)·새것에 현혹된 現代(현대)
韓國新聞(한국신문) 66年(년)부터 宗敎(종교)에 関心(관심)
役割(역할)·比重(비중)·影響(영향)커
國內(국내) 宗教中(종교중) 天主敎(천주교) 가장 閉鎖的(폐쇄적)
기계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모든 전통적 가치를 송두리채 뒤흔들어놓고 말았다. 찬송가에 「재즈」가 도입되고 춤추고 노래하는 修女가 등장했다. 젊은 神父들이 장가가겠다고 아우성이고 聖職을 청산하고 술집에 취직한 神父가 「解放」을 구가한다. 「神은 죽었다」가 아니라 神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科學萬能에 영광을 돌리고 宗敎 아닌 물질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떠든다.
이른바 末世현상이다. 각 宗敎는 이 「길잃은 半」들의 救靈을 위해 더 큰 소리로 福音을 외치건만 묵은 가치를 싫어하는 현대인은 어떤 「말씀」이건 외면하려든다.
이처럼 새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의 주름살을 감추고자 늙은 宗敎는 「化粧」을 한다. 儀式과 복장의 간소화 聖書의 改譯, 기구의 신설, 제한의 철폐 등 이러한 「化粧」을 흔히 近代化라고 말한다. 기계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메디아」의 발달은 五大洋六大洲의 거리를 地圖上의 거리만큼이나 좁혀주었고, 현대인이 세계 각국의 종교가 근대화하는 모습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이 「메디아」의 힘이다.
國內의 매스콤(新聞)이 종교에 관심을 보인 것은 1966년 초부터다.66년 2월, 「敎義談論」난을 신설, 聖職者들의 원고를 싣던 新亞日報가 同年 5월 10일 「宗敎界」라는 고정난을 만들었다. 基督敎·佛敎·天主敎로 三分하여 敎界의 소식을 전해주는 이난은 週2회 내지 3회가 나가고 있다.
이어 66년 11월 2일부터 17일까지 「모색하는 韓國宗敎界」라는 6회에 걸친 企劃記事를 東亞日報가 마련했고 67년 3월 7일부터는 中央日報가 現代化속의 「韓國宗敎」를 불교·유교·천주교·기독교·천도교의 순으로 5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것을 계기로 다른 中央紙들도 종교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 저명한 성직자의 別世, 敎會나 寺刹의 亂鬪劇, 邪敎의 殺人劇등 주로 事件記事만 취급하던 新聞들이 이제는 평균 週1회 이상 모색하고 고민하는 종교계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다. 社會의 公器로서 한국인구의 3분의1을 점하는 宗敎人口를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과 현대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과 비중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는 「메디아」의 시대이고 현대인은 「메디아」 속에 산다고 한다. 「메디아」의 눈이 미치지 않는 구석이 없고 「메디아」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현대의 영웅이라고 할 만큼 「메디아」는 시대의 총아로 등장했다.
현대를 살아야하는 종교도 이 시대적 총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힘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敎團이 발행하는 각종 「메디아」를 布敎手段으로 삼음은 물론 일반 「매스콤」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반 「매스콤」에 대한 각 종교간의 活用度는 서로 다르나 이중 가장 둔감한 것이 天主敎라는 것은 中央紙 종교담당 記者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천주교기관에 취재하러간 기자는 우선 자료를 얻을 수 없고 또 누구를 붙들고 취재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 진다. 널리 보도하는 것이 유익한 경우에는 마치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는듯이 기자를 대하는 자세가 시종 봉쇄적이다.
지난번 江華島사건 하나만 예로 들더라도 중앙지 記者들에게 사건의 발단을 신속히 알려 여론화했더라면 「宗敎迫害」라는 명분 앞에 紡績業者들은 일찌기 무릎을 꿀었을 것이다. 朝鮮‧京鄉 양지가 뒤늦게 약간 취급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나쳤다. 교황청에서는 해마다 「예수승」천 다음주일을 「세계 弘報의 날」로 정하고 가톨리시즘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날이 있었던가? 「가톨릭 저널리스트클럽」이 생겼을 때, 가톨릭信者 중에도 「저널리스트」가 있었구나하고 새삼 놀랐다. 한국天主敎의 機開紙 『가톨릭時報마저 가톨릭이 「매스콤」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는 정도다. 聖職者들가운데 그래도 젊은 記者들과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은 神父들이다. 경박하거나 천박하지 않으면서 개방적이고 기탄이 없다. 그들의 意識은 이미 상당히 「근대화」되어 있다고 보여 지기도 한다. 그런데 公的인 관계에서는 그토록 폐쇄적이고 비협조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가. 神父들의 근대화에 대한 의식과 현실사이에는 엄업청난 거리가 있다. 특히 敎皇大使館의 「울타리」는 어느 修道院의 담보다도 높고 두꺼운 것 같다. 좀 악의적으로 과장하면 가톨릭의 「크레므린」이다.
尹汝焦(東亞日報社新東亞部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