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지식과 감정이 인쇄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요한 구첸버그가 유명한 「마자린」성경을 활자로 인쇄하려고 영성한 木製인쇄기를 손으로 돌릴때 그것이 서구사회 공업발전을 일으키는 중요한 문화적요소가 되고 그후 4세기를 「매스·콤」으로 꽃피우게 할 것임을 짐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신문에 대한 원시적 개념은 상당히 일찍부터, 유롭·영국·미국 등지에서 성숙되어 갔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에 일찌기 없었던 최고의 「매스·콤」 시대에 살고 있다. 전자기계 특히 라디오와 텔레비는 시간을 극히 작은 순간으로 축소시켰고 공간을 안락의자와 텔레비의 스크린간격으로 줄였다. 참으로 전자 「메디아」 세상을 안방으로 옮겨 놓게도 한다.
생활한다는 것은 의사를 상호교통하는 것(COMMUNICATION)이다. 오늘날 복잡한 기술문명의 시대에 있어 「콤뮤니케이션」은 인간의 문화적 平衡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과거사를 되새겨주고 미래를 예견케 한다.
지구상의 수다한 정보의 흐름은 인간의 행위와 소망의 수준을 높이며 국가와 사회를 다같이 풍요하게하며 수백만의 사람들을 서로 친숙하게 한다. 무엇보다 「매스·콤」은 전인류의 자유와 조화의 기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양한 환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의 공동목적과 공동관심사를 보여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탐구에 있어서 현대 求道者의 지팡이인 것이다.
훌륭한 전자 「메디아」에 의한 보도는 복잡한 세상에서 급격히 변화, 발전하는데 보조를 맞추어 그 변화에 상응하는 빠름으로 제정보를 제공한다. 그것은 중대문제를 지적하여 밝혀준다. 문화사이에 다리를 놓고 상호 이해를 위한 분위기를 창조하기도 한다.
「메디아」는 청취자와의 對人관계를 통하여 시험하고 토론하여 어떤 판단에 이르도록 하는 형식의 「전달」을 불허한다. 오히려 異度의 여지가 없는 것같이 보이는 사실들을 나열하고 강한 감정적 움직임을 일으키게 하며 그러한 힘과 고집으로 청취자를 설복시켜 마치 청취자 스스로의 소신같이 되게 하여 在來의 신념을 바꾸게 하고 어떤 일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보도자는 이에 만들어진 음식과 담배나 비누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이미있는 지성의 소산으로 청취자와 독자를 대한다. 인간이 그의 어떤 사상 형성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그가 쓰는 물질적 상품을 만들때 참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 인간은 조상들이 알고 있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세상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자기행위에 대한 동기가 조상들의 그것만큼 확실한지는 의심스럽다.
이런 상황은 그것이 너무도 표면적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종교집단이 성공만을 위하여 검증된 규범을 따르고 복음의 절대적 요구를 해석하는 등의 어려운 일을 수행하는 대신 긍정적인 사상의 낡은 「슬로간」과 안이한 형식에 의존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종교담당 전달자들은 「자기만의 이익을 위하는」 교묘한 인간들에 둘러쌓인 위험은 커진다. 우리는 「매스·메디아」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세련될 필요가 있다. 용인된 습관이나 행위에 적응하려는 생각으로 근본적인 원리를 타협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임무는 어떤 누구보다도 중대한 것이다. 종교만이(외로이) 근본적인 생활개혁을 위해 意識的으로 「매스·메디아」를 사용하고 있다. 「매스·콤」에 있어서의 우리의 근본과업은 우리 자신들에 대한 봉사가 아니요. 우리의 주님께 봉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널리 선포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말씀」의 의미를 탐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신념으로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진리를 탐구하고 인식하는 자유를 통해 인간은 하느님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매스·메디아」를 적당히 사용하는 것은 하느님의 모든 백성에 대한 봉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이 신앙을 전파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 사회로 사람들을 인도해야 한다.
그 사회에서 사람들은 신앙의 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다. 理念과 제제도는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가능성의 범위 내에서 原理·理念·理想과 부합될 때만이 存立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중전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신앙과 일에 대해 활발히 그리고 탐구적인 自問自省을 하도록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문제를 그냥 두는 것보다는 낫다.
세상에 봉사하려는 교회의 소망은, 교회와 세상이 생각하는바가 보다 똑똑히 상호 이해될 때,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민과 교회간에 자유롭고 개방적인 의견 교환이 요구됨은 당연하다. 또한 『교회 내에 여론이 없으면 교회생활에 무엇인가가 잘못돼 가고 있으며, 그것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책임져야할 결합이다』라고 천명하신 교황 비오 12세의 말씀을 이론적으로 또한 실제적으로 기억해야만 된다.
현대 「매스·콤」은 구시대로부터 통행이 막힌 모든 경계와 뚫을 수없는 온갖 장벽을 무너뜨린 세계를 이룩하였다.
존·밋첼(西江大교수·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