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군은 나보다는 다섯살이 위요, 나의 형보다는 다섯살 밑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하고도 살뜰한 친구요, 형하고도 허물없는 벗이었다. 그는 그때 열여덟, 소신학생이었다.
여름방학내 R군은 우리 형제를 날마다 바다로 이끌었다. 그렇다는 것이 그의 집이 우리 윗마을에 있어서 그가 우리집으로 와 우리 형제를 재촉해서야 바다로 나갔기 때문이다. 송도원(松濤園-元山 해수욕장)에서 갯목하나를 사이에 둔 바다가 우리의 지정욕장(?指定욕장)이었다. 거기는 또한 분도회 신부 수사들의 목욕터이기도 하였다.
R군은 장난을 즐겼다. 특히 「몽키푸레이」를 잘햇다. 흉내도 썩잘내거니와 신학생답지 않게 「젖가슴」 「속치마」 등 여자에 관한 문제를 내어 곧잘 우리를 웃기고 또 당황케도 하였다.
그런 어느날 갯목에서 굿(巫祭)이 벌어졌다. 이 갯목은 강물이 바다에 드는 물목으로 그 물밑이 고르지 목하고 물살도 괴상하게 휘말려서 한해에도 몇번씩 인명의 사고를 내는 마(魔)의 장소다.
무당은 닭 한마리를 죽은 사람의 혼백으로 삼고 물속엘 들락날락하며 미친듯이 푸념을 하고 빠지는 헤늉도 영절스럽게 하더니 닭은 그채로 물가에 버리고 간다. 우리 일행도 굿 구경을 하고 돌아와 솔나무 그늘 아래 들어서 한잠들 잤다. 얼마만엔가 느러지게 자고 일어났더니 R군이 한구석에서 불을 짚여 무엇을 끓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때마다 조개를 잡아선 해변가 인가(人家)에서 남비를 빌어다 끓여 먹기도 하는 터이므로 처음엔 그가 또 조개를 삶는구나 하고만 여겼더니 코에 스며오는 것은 찝질하고 비릿한 조개 냄새가 아니라 구수하고 기름진 고기냄새가 아닌가-
얼시구나 남비를 둘러앉으니 불 짚이기에 땀을 뻘뻘 흘리는 R군은 태연히 한마디 하되
『이 냄비에 든 것은 마귀의 고기인데 성인이나 성인이 될 사람이라야 먹지 그렇지 못한 사람은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덧붙이는 설명은 들으나 마나 그것은 바로 아까 무당이 버리고간 닭을 줏어다 끓인 것이였다. 우리는 그말에 조금 섬짖은 했으나 출출한 속에서 치미는 완성한 식욕에 모두다 이 성인잔치에 군말없이 참여하였으며 마귀 다리와 살고기를 진탕으로 잡쉈던 것이다. 이런 즐거운 나날이 흘러서 개학을 2 · 3일 앞둔 어느날, 그날도 하루를 바다에서 지내고 이제는 돌아 오려고 민물에 몸을 씻으러 객목엘 들어간 참인데 한거름 앞장서 들어간 R군이 갑자기 『나 빠진다! 나 빠진다!』하며 싱글벙글 하길래(이것은 정확한 기억이다) 나는 쳐다보고서도 『또 장난이겠지』하고 몸을 닦고 있었더니 헤엄치듯 두어번 머리를 물속에 곤두박았다 냈다 하더니 고만 사라지고 마는게 아닌가! 그제사 내가 고함을 쳤으나 바로 옆 뱃전에 일하던 어부들도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라 처음엔 멍하니들 있다가 한참만에야 구조에들 나섰으나 허탕이었다.
시체는 다섯시간 후인 밤 아홉시에야 그물에 건져졋다. 나는 이것이 처음 죽음을 접한 것이어서 공포도 공포려니와 친구를 멀건히 보면서 죽였다는 죄악감에서 얼마동안 동내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무당의 달고기 비밀만은 스스로이 불안감도 있고 해서 종시 발설치 않고 말았다.
아는 여름이 되면 의례히 이 소년시절의 마귀의 고기와 R군의 죽엄을 회상한다.
具常(詩人)
컷 김광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