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社會(현대사회)와 매스콤
가톨릭 매스콤 倫委(윤위) 誕生(탄생)을 促求(촉구)
大衆社會(대중사회) 덮어 놓고 無視(무시) 못해
그 特色(특색) 肯定(긍정)코「敎會(교회)매스콤」활용해야
가톨릭倫理觀(윤리관)에 어긋나도 一般倫委(일반윤위)에 庇護(비호)돼
파스칼은 사람을 가리켜 『생각하는 갈대 』라고 했지만 東京大學의 고야마 敎授 같은 이는 『근대 사람은 「매스·콤」 선풍에 흔들리는 갈대』라고 말하고 있다. 「매스·콤」의 위력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매스·콤」에 흔들리며 살게 되어있는 현대인의 생리속에는 자신의 독자성마저 상실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까지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맥루한(천주교신자)의 이론에서는 보여주고 있지만 電氣時代에 들어선 오늘날에 있어서 「매스·메디아」(大衆媒介體)는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곧 인간의 피부를 둘러싸고 「맛사지」를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메디아」는 곧 「메시지」 그 자체라고 말하고까지 있다.
가톨릭에서도 「홍보의 날」을 기해 「저널리스트 클럽」 같은 모임을 根幹으로 삼아 「매스·콤」의 물결속에서 가톨릭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무척 경하할 일이다.
현대 사회의 대중은 자기의 개성마저 상실할 정도로 「메스·콤」에 중독되 있는 지도 모른다. 『참된 인간적인 자유에서 생각하고 비판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오늘날의 대중사회의 특색을 설명한 학자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대의 대중사회 특색을 덮어 놓고 부정하고 나오면 할 도리는 없는 것이다. 이같은 특색을 긍정한 바탕위에서 우리는 가톨릭적인 「매스·콤」의 위력을 활용할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홀론 J.쉰 주교는 현대인의 특색은 판단의 독자성이 없다는 것이며 일간신문이나 그림책 또는 잡지 따위 이외에는 때때로 소설책을 손에 들고 있을 정도지 독서는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정숙·명상·침묵 그밖에 자기의 영혼속에 깊이 잠겨보고 싶은 한가로운 시간을 갖기 싫어하고 듣던지 안듣던지 간에 라디오 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를 피하기 위해서 탐정소설이나 영화 등이 항상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우기 주요한 대목은 영향을 주기보다는 영향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자기대신 생각해주는 시사평론가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을 매일 읽는 독자, 라디오 청취자, TV 시청자, 잡지 독자들이 대부분 이와 같이 무타판적으로 공급해주는 대로 받아 먹기만하는 무기력 대중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니까 제작 측에서 사회악적인 毒菌을 혼합해서 독자나 시청자에 매개를 시키면 곧 독균이 오염될 가능성도 있지만 위생처리된 청신한 영양소가 「매스·메디아」를 통해 공급이되면 사회정화에도 크게 작용된다는 가능성의 일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메스·콤」의 특징과 대인의 특색을 관련시켜 밝은 사회를 이끌어 가려는 노력이 이른바 신문윤리위원회 또는 방송윤리위원회, 잡지윤리위원회와 영화윤리위원회, 주간신문윤리위원회 같은 조직을 통한 「매스·메디아」에 대한 선의의견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엄연히 이같은 조직체가 훌륭한 윤리규정을 또는 강령을 모셔놓고 「매스·콤」의 횡포 내지는 비윤리성을 바로잡는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가톨릭적인 윤리관에 어긋나는 일이 일반사회의 각종 윤리위원회에서는 보호를 받는 일도 허다한 것이다. 가령 가족계획문제 같은 것이 그 한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그들의 윤리규정에는 명시되어있지만 좋지 못한 영향을 계속 발산하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영화윤리규정 제4조 ㉡항에 종교에 관한 것이 있어 종교와 신앙을 조롱·증오의 대상으로 한 것. 종교의식의 집행절차가 사실과 판이한 것. 성직자를 희화적 인물 또는 악한으로 취급한 것 따위는 다루지 못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간간히 애정물 영화에 신부나 수녀를 희화적으로 다루는 경우를 우리는 보고 있다. 또 한가지는 퇴폐적인 내용을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표장지에 감싸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도 있다. 이와 같은 것은 각종사회의 윤리위원회에서 다루기도 한다지만 가톨릭 공교회의 호교적이고도 가톨리시즘의 선양을 위해서도 독자적인 가톨릭 윤리위원회의 선의의 압력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제 가톨릭에서 덮어 놓고 「가톨릭신문 윤리위원회」나 「가톨릭 방송 윤리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자고 웨치고 싶지는 않다.
그 까닭은 인적인 면에서 난점이 많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불란서나 미국같은 데서는 가톨릭의 영화윤리위원회가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당분간 「매스콤」 전반을 통털어 다룰 수 있는 「가톨릭메스콤윤리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의 각종 윤리위원회에서 조사수집된 각종 자료와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또는 각 교구에서 입수된 각종 「매스메디아」에서 나타난 정보를 갖고 심의하는 구실을 도맡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신문에서(연재로 나오는 소설) 역사에 나오는 저명한 신부님이 아주 몹슬분으로 다루어져도 가톨릭 신앙의 중추가 될 고백성사 문제가 왜곡되게 보도되어도 성직자나 평신자들이 개별적으로 흥분하거나 항의하거나 하는 소극적인 견제를 하기보다는 이같은 집단의 힘을 갖고 임해야 되리라 생각되는 바이다.
「매스콤윤리위원회」 같은데서는 각 「매스메디아」의 오류를 꼬집어 내어 그 시정을 촉구한다는 수동적인뿐 아니라 사회악 조성으로 오도될 우려가 있는 문제와 가톨릭의 호교적인 문제 또는 윤리관 등을 앞질러 깨우쳐 줄 능동적인 소임도 아울러 도맡아 보지 않으면 안될 줄로 안다. 이같은 일은 필요에 따라서는 저널리스트 클럽이나 가톨릭 법조인회 또는 가톨릭 교육자 가톨릭 문필가 클럽 회원들의 공동작업으로 그 발족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신태민(言論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