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NC】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교황 바와로 6세가 터어키 방문시에 순례한 바 있는 「에페소」 근처의 집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는 것이 사실일까?
현대 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수긍이 갈만큼 확실한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에페소」의 폐러로부터 5「마일」 떨어진 「알라닥」 산의 가파른 경사지에 있는 한 집이 마리아가 살던 집임이 확실하다고 주장할만한 몇가지 증거가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상에서 성 요한 사도로 널리 알려진 한 제자에게 그의 어머니를 맡겼고, 뒤이어 「예루살렘」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성 요한이 그의 양모(養母)를 위험한 상태에서 구출해내어 다른 곳으로 모시고 갔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를 뒷받침 하는 사실은 3세기 말엽부터 4세기 초까지 생존했던 교회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서기 37년에서 42년 사이에 모든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추방당했다는 사실을 기록했고, 3세기 초에 죽은 신학자 텔툴리안은 성 요한이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한 후 곧 지금의 터어키 지방인 소아시아로 갔다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성 요한이 「예루살렘」을 떠날 당시 마리아가 생존해 있었다면 마리아를 남겨두었을리 없다고 생각할 때 마리아가 소아시아로 갔다는 주장은 그럴듯 하지 않은가.
그러면 소아시아 어느 곳에서 살았을까.
431년 「에페소」 공의회의 참석자들이 작성한 한 교서를 보면 『신학자 성 요한과 하느님의 어머니인 은총이 가득하신 동정 마리아』가 「에페소」에 있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한 성서학자는 이상과 같은 인용문이 들어있는 문장의 구조를 볼 때 두 사람이 다 그곳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는 뜻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에페소」에서 공의회를 개최한 교회가 아마 이 세상에서 마리아에게 봉헌된 최초의 교회였다는 점은 마리아와 「에페소」의 관계를 강력히 시사(示唆)하는 또 하나의 증거라 하겠다.
한편 19세기 말엽에는 탐험대가 누워서만 살던 독일의 신비주의자 엠머리히 수녀가 당(當) 세기 초엽에 묘사한 바 있는 성모의 집을 찾아 「에페소」로 향하는 탐헌길에 올랐다.
두 탐험대는 제각기 별도로 그 독일 수녀가 묘사한 바를 그대로 쫓아 10년간에 걸쳐 탐색한 결과 그 수녀가 지적한 곳에서 그 수녀가 묘사한 모양과 꼭같은 집터를 발견했다.
또한 이들 탐험대는 그 지방의 희랍정교회 신자들이 옛날부터 동정 마리아와 탐험대가 찾아낸 그 집터를 서로 연관시키는 풍습이 있음도 알아냈다. 그러므로 엠머리히 수녀의 계시는 놀랍게도 그녀가 말한것과 꼭같은 집뿐 아니라 그 집이 마리아의 집이였다는 그 지방의 전설을 찾아내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