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女性(현대여성)] ③ 敎育(교육)-참된 自我(자아) 발견토록 해야
自身(자신) 잃고 자신의「身分(신분)」조차 모르는 現代敎育(현대교육)
젊은 세대 旣存倫理(기존윤리) 무조건 안따라
많은 부모들 자기 子女(자녀)에 대해 無知(무지)
『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아빠가 모르는 것이 다행이구나. 수녀님, 알리시지 마세요…』 아버지가 화가 날까 보아 무조건 딸을 감싸주려고 노력했던 어머니는 너무나도 불쌍해 보였다. 남편의 협조없이 혼자 애써보는 것과 자기도 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어머니는 모성애로 인해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런데 교육하는 사명은 오늘에 있어서도 어제와 똑같이 주로 어머니들에게 있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공의회교부들이 세계 모든 여성에게 보내준 메시지에서 경고했듯이 내일의 세계를 빛나게 건설해야할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 인간이 아름다와야 세계도 살기 좋게 되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하나의 생명을 기르고 길러서 세상에 보내는 이도 여성이거니와 참으로 인간이 되어 결정적으로 세상에 태어나 살게 해주는 이도 여성일 것이다. 여성에게는 바로 이렇게 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다. 자녀들을 가진 어머니에게나 여성교육가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막론하고 여성이라면 누구나 다 「어머니」가 되어야 하겠다.
한국의 발전은 작년만 해도 서울이나 큰 도시에만 볼 수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서울과 인근한 시골에서도 날이 갈수록 더욱 활발하게 보여지고 있다. 세계발전의 속도는 빠르며 인간의 발견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부모된 사람은 자녀들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다. 그들의 행동이 아무리 부모눈에 거슬릴지라도 현대인은 정의감이 강한 것 같다. 부모의 세대가 말하는 뜻에서의 정의 즉 윤리를 기준으로 하는 정의감은 아니지만 현대인은 먼저 자기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말하자면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존재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아직도 자기 아들 딸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따라서 자녀들도 자신이 누군지를 모른다. 부모가 내세운 도덕기준에 맞는 「나」는 될 수 없고 참된 「나」로서 내가하는 「착한 행동」 마저도 「죄악」으로서 취급을 받고 있기도 한다.
왜 그랬는지도 모르면서 야단맞은 다음에 부모가 택했던 사랑의 표시- 선물이나 돈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라는 인간을 부모가 인정만 해준다면 오히려 좋았을 것이라고 젊은이들은 생각한다.
교육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자신을 알고 자신의 참된 얼굴이 나타나게끔 해주어야 될 터인데 많은 경우에 있어서는 교육은 커녕 젊이들로 하여금 자신을 잃고 자기의 「참된 신분」을 모르게끔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교육자 중에서도 첫째로가는 부모 특히 어머니는 이면에 있어서 더욱 자녀들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가운데서만 자신의 올바른 모습을 갖게 된다. 고용주와 품팔이 사이의 관계도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관계이긴 하지만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서 가진 관계에 지나지 않으니 「영원」을 갈망하는 인간성을 충족시킬 만한 것은 아니다. 은행에서 나란히 앉아 같이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는 서로 동료가 되는 관계를 맺는 것이지만 같은 생활방식 가운데서 병존(並存)하는 것뿐이지 생활이 같으므로 반드시 마음이 서로 통하게 되지는 않는다. 고학하는 학생에게 학비를 대주는 것도 은인과 수혜자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갖는 것이지만 위와 아래-주는 자와 받는 자-의 차이가 있다.
자기의 「참된 신분」을 찾게 하는 관계는 이것들과 다르다. 사람의 「신분」은 그의 환경이나 실력 용모나 행동과 같은 부분적인 것에 관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전체를 포함시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여성은 어머니되는 본능을 갖는 동시에 또한 인간의 세부적인 면을 넘어 직각적으로 이 사람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힘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은 이런 뜻에서의 교육자가 되기에 합당하다. 어머니가 딸을 알기 위해서는 훈계를 하는 것보다 딸의 말이나 행동을 어머니만이 가질 수 있는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좋겠다.
자기의 이상에 맞도록 딸을 기르는 것보다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헛되지 않겠다.
여성에게는 모성애가 있다.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를 아는 여성은 순수한 모성애를 갖게 된다. 마치 마리아가 십자가 밑에 서계셨을 때의 만민의 어머니가 되신 것과 같이.
주매분(修女·聖心女子大學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