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世紀(세기)를 照鑑(조감)한 아데나워 自敍錄(자서록)
絶對者(절대자)가 준 이 世上(세상)과 光明(광명)을 언제나 善用(선용)해야
『우리의 역사엔 절망 암흑 불안 소란 공포가 많았다. 그러나 부단히 인간의 영혼은 광명과 평화를 위해 투쟁해왓다. 진실로 정신과 영혼의 힘에는 놀랄만한 그 무엇이 있다.』 (本文에서)
시네마 라디오 테레비죤과 함께 살고있는 현대 기술세계는 대중집단사회(MASS SOCIETY)로 향한 발전을 사랑하고 있고 이 대중 인간은 항상 물질주의로 기울어 지고 있는 것이다.
균형을 기한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인데 이젠 모든 나라의 기독교 정당은 기독교 정신으로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크리스챤의 개인적인 실존을 위한 실질적인 조건을 창조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들 실질적인 조건 중에는 기아 · 불행 등의 공포로부터 노동자들 구할 수 있는 재산의 겸손한 제재가 바로 그 하나요, 아이들이 건전한 환경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가족을 위한 적당한 주택, 다시 말하면 햇볕, 활동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 어느 특졍한 개성인은 발전을 위한 휴식과 조용한 훈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킬 휴식과 자유시간이 잘 보장된 적절한 가정, 이것이 또 하나의 조건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에겐 「크리스찬니티」와 물질주의 사이의 세계적인 투쟁은 젊은 혼에의 싸움이기에 젊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크리스찬적인 인격을 스스로 도와야 하고 신앞에 그의 생을 책임지는 의무에 충실 하도록 설복시키는데 우리가 성공 못한다면 우리의 과업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 『신에의 영광』이라는 시구(詩句)가 「평화」라는 어휘의 앞에 오는 이 자주 반복되는 성서의 시편엔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먼저 신에게 영광을 올릴 때 평화는 우리에게 다만 자연히 부여되는 것이요, 또 우리에게 주어질 유일한 것이다. 그때엔 어디서나 우리들에겐 영적인 평화가 있는 것이다.
난 이 위대한 진리를 너무나 무시한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우린 먼저 신은 반듯이 숭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모두 공감해야 한다. 우리들은 누구이건 무엇을 하건 상관없이 우리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내리게 하기위해 신에게 먼저 영광을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역사에는 절망적인 암흑기 불안과 소란 공포 등의 어두운 시대가 많았다.
그러나 부단히 계속해서 인간의 영혼은 광명과 평화를 위해 투쟁해 왔다.
진실로 정신과 영혼의 힘에는 놀랄만한 그 무엇이 있다.
인간의 정신과 영은 패배당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영)은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린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우린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생각하고 우리가 겪어온 암흑시대를 생각할때 용길 결코 잃어서는 안된다.
자! 이젠 우리 서로 상기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그분이 우리 불쌍한 인간에게 영구히 가져다 주신 이 세계와 이 광명을.
가장 높은 곳에 계신 주님에게 영광이 있어지이다!
우린 서로 주님을 빋어 숭배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때야말로 천사의 예언이 진리로 군림(君臨)하리라. 地上에 平和! 人間에 善意! (끝)
裵永根 神父 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