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무더운 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시원한 호수 그 호수에 둥둥 띄워 보는 노랑참외의 신세나 되었으면…하고 그대 찾아 느닷없이 찾아간 온양근처의 넓고 맑은 저수지는 여름풀이 욱어지고 둥근물이 넘치도록 담겨진 풍경이 마치 태고적 신화라도 담뿍 담겨진 큰 고물 그릇과도 같았다.
멍 하게 넓혀지는 물 위에 새파란 풀잎들이 비단방석 같이 곱게 깔려있어 시원해 보였다. 나는 어째나 더웠던지 떠도는 참외가 부러워 금방이라도 물속에 풍덩 하고 뛰어들어 갈 것만 같은 충동을 일으켜 주던 작년 여름의 일이었다.
호수가에 앉아 참외 두개를 먹고나니 아무 생각조차 없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나이롱참외의 맛이야말로 나의 여름을 장식해 주는 으뜸가는 미각이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참외가 있는 까닭에 참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참외맛에 빠져 오수가에까지 찾아갔다.
물에 띄워논 참외장수는 싱글벙글 하면서 삼천리강산에서 제일 맛좋은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정말 시원하고 맛이 그만이다. 그 참외를 물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하나 둘 깎아 먹는 재미야 말로 시간을 붙들어 매놓는다고 할까. 하여간 달콤한 순간이다. 나는 그 순간에 행복한 여름을 느낀다. 건너 마을의 지붕들이 포근히 눈을 즐겨주며 나에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햇빛에 쌓인 군청(群靑)색 물결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데 내 옆에 옹기종기 모여든 아이들 때문에 「스케치」고 무엇이고 잘 안된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고 저리로 가서 놀라고 쫓고는 또다시 그 시원한 참외를 주어 깎기 시작했다. 멀리 흩어져 가는 아이들의 순백한 웃음이 천사들이 따로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 맑은 호수가 담뿍 출렁거리고 있음을…. 무심히 뛰여노는 그 촌락 아이들과 도회지 아이들을 비교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저멀리 아득한 그옛날 「타히티」섬으로 이주아여 그곳 열대지방의 건강한 자연인과 더불어 즐기며 그림 그린 「고갱」의 생애가 떠올랐다.
싫증난 도회지생활에 질린 기분을 알고도 남음이 있음을 몸소 그곳에서 절실히 느꼈다. 정말 동감이다.
더운날씨에도 옷을 걸쳐야 되고 또 시간 지켜야 살아 나가는 문명생활이야말로 인생타락의 원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런일 저런일을 생각하니 어렸을 때 그렇게도 푸짐하게 배가 터지도록 먹던 청참회의 추억이 엊그제 같이 떠올랐다. 그러나 요새는 별로 눈에 띄지않은 그 참외에 한가닥의 향수를 느끼며 새삼 청참외의 처량함을, 시대따라 발전하고 변질한 나이롱참외의 찬란함을 되새겨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참외도 근대화 하는데 나는 어떨까 하고 생각하면서 참외라면 잊지못할 6·25때 추억 한토막을 빼놓을 수 없다.
곺은 배를 움켜쥐고 밭고랑길을 걷고 있었다.
아마도 천안 근처였다고 생각나는 그 개구리참외 한개가 어찌나 큰지 나도 모르게 남의 밭에 들어가 따 먹던 그 진미가 지금도 입맛다시게 된다. 호수가에 무성한 녹음방초 속에서 개구리참외가 뛰쳐 나올 것만 같은 아득한 느낌을 느끼면서 아마도 저 마을에도 그러한 낙원이 있을까 하는 무수한 호기심에 멀리서 아물아물 보이는 그 마음의 포근한 인정미가 그리웠다.
얼마후 저녁노을과 함께 나를 부르는 건너 마을로 거울과도 같은 물위를 노저으면서 사공따라 하늘 쳐다보며 조용히 조용히 잠자듯이 조용해 보이는 평화촌으로 배를 몰고 있었다.
깨끗하고 너무 조용한 석양의 노을을 즐기면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풀밭에 매달린 누런소의 기다긴 하루해도 마냥 그립다.
글 · 그림 琴동원(東洋畵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