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컴뮤니케이션의 날」 紀念(기념)에 즈음하여
機會(기회)와 責務(책무)에의 反省(반성)
하느님은 새 「메디아」 통해 말씀
참되고 완벽한 知誠(지성)만이 混雜(혼잡)한 時代(시대)에 安全盤(안전반) 役割(역할)
與論(여론) 社會的(사회적) 結合(결합)의 象徵(상징)이며 要因(요인)
國家(국가) · 敎會(교회) 指導者(지도자)들의 決定(결정)의 바탕
한국
- 뒤늦게나마 새로운 「매스 메디아」에 挑戰(도전)
- 장차는 印刷(인쇙)에서 視聽覺(시청각)으로 옮겨
- 表現自由(표현자유) 情報權利(정보권리)의 必然的(필연적) 結果(결과)
지난 5월 7일을 사회 「컴뮤니케이션」 교황위원회는 모든 신자들이 세계 「컴뮤니케이션」의 날을 기념하도록 요청했다. 「매스콤」 기구에 관한 제2차 「바티깐」공의회 율령에 관해서는 「매스 메디아」 전문가들에겐 실망을 주었으나 이 세계 「매스콤」의 날 기념은 전세계적으로 열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이 교령은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매스 메디아」의 중요성에 대한 교회의 진정한 관심을 반영시킨 것이다.
지난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주교회의도 새로운 「매스콤」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매스매디아」 운동과 교회가 보조를 같이하고 잇음을 보여주었다. 주교회의는 이러한 관심을 신속히 행동화 하기 위해 馬山의 김수환(스테파노) 주교를 이 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었다. 김수환 주교는 즉각 다음행동으로 옮겨 준비회합을 소집하고 이 문제를 모임에 참석한 일단의 전문가와 실무자인 평신자와 성직자에게 골고루 맡겼다. 비록 한국의 가톨릭교회가 「매스메디아」사업에 뒤늦게 착수했으나 앞으로 속출하는 새롭고 위대한 「매스메디아」에 도전해 나갈 것이다. 타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가톨릭도 지금까지 인쇄 「메디아」와는 보조를 같이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차는 시청각 「메디아」 즉 「라디오」, 영화, 「텔레비젼」에도 도전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이들 「매스 메디아」에의 접근은 신중론자들에게 또하나의 교회가 세속화되는 징조라는 충격을 줄 것이다. 나아가서 「매스 메디아」 생산품시장을 이루고 있는 많은 연예인 · 작가들이 기괴한 행동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불유쾌한 선전은 「매스 메디아」 분야에 직접 관여해온 용감한 사람들에 의해 마음을 돌리게 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교회의 「분노」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우리가 주지하는 론거를 내세워 위험을 무릎쓰고 이제 설명하려 한다.
인간의 알 권리는 천부의 것이다. 이 권리는 하나님 자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요 어떤 권위에 의해 제공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모든 「메디아」를 활용하는 기관들은 그것이 민간이든 교회이든 이 천부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의무가 있다. 더우기 정보에 대한 권리는, 알려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나 직업적인 전달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부담이 돼 있다.
물론 개인의 경우에 있어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은 상당한 신중성과 거기에다 도덕률과 정의 및 관용이란 두 핵심을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참되고 완벽한 지식만이 지성적으로 도덕적으로 혼란된 이 시대에서 개개의 인간이나 사회가 지탱할 수 있는 안전판이라는데 정보에의 권리는 강조되어야 한다. 더우기 정보에의 권리의 필연적인 결과가 완전한 표현의 자유다.
약20년전 미국의 자유언론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 위원회는 공개토론 역시 <자유사회의 필요조건이며 따라서 표현이 자유는 적절한 공개토론의 필요한 조건>임을 지적했다.』 인간의 정보에의 권리에 관해 밀접한 관계를 갖게된 것은 교회와 국가가 다같이 건전한 여론을 원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론은 인간이 사회생활에 적극 참여하려고, 친구를 만나고 그를 이해하고 친구와 통화하려는 의욕과 필요 때문에 생겼으며 사회생활에 있어 여론은 사회결합의 상징이며 요인으로서 스스로 나타난다. 「사회적 결합이 상징과 요인으로서의 여론은 교회나 국가의 지도자들이 언제나 자신들이 해야할 모든 결정들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여론에 쫓아 가장 열성있게 결정들을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가장 현명하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 봉사하려는 교회의 바램도 교회와 이 세계가 인간 각자아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가 뚜렷이 이해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종교사회 간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의견교환이 요구된다. 이는 또한 지성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다같이 교황 비오 12세의 말씀중에서 선언된다음 사실을 인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만일 교회안에 여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에는 무엇인가 결여된다. 이러한 결함은 성직자나 신자에게 함께 채깅ㅁ이 돌아갈 것이다.』
위의 견해에 따라 교회는 「콤뮤니케이션 메디아」에 실지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전하고 참된 찬사를 표명하고 동시에 그러한 새로운 기회들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매스 메디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메디아」를 개발한 인간의 발견들을 승화시켰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느님이 진실과 사랑을 인류에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함으로써 하나님께 봉사한 것이다.
교회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존」 그리고 영화산업을 사목적 관심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다. 교회는 교회를 통해서보다도 「콤뮤니케이션 메디아」를 통해 봉사할 것을 더욱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공업기술의 기적들」을 통한 보다 더한 봉사를 찾음으로써 교회가 모든 인류의 봉사를 도울 것을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회는 깊은 이해와 참된 존경, 정복하려는 의도가 아닌 봉사하려는 의도로, 경멸아닌 찬사로, 파멸 아닌 강화되고 보존괴는 세계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사회를 위한 전달-이것은 기독교인이 할 일의 정수다. 오늘날 「세계」와 「전달」이란 단어는 손을 잡고 있다.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가 됐고 「매스 콤뮤니케이션」이 이 사회를 묶어놓고 있다.
「라디오」나 「텔레비죤」 영화 그밖에 「메스 메디아」란 새로운 도구를 거부할 근거는 없다.
설사 하느님이 보다 명백히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해도 전달도구가 단순하고 교회가 사회의 보다 중심부에 위치했던 그런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러나 오늘날 하느님은 이 새로운 「메디아」를 통해 말슴하고 있다. 「사탄」의 위력 못지않게 하느님의 도구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거기서 기독교인들은 「텔레비죤 프로」나 영화를 통한 하나님의 재현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지구는 천주님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매스 콤뮤니케이션 수단도 포함해서 완전한 것이다』 「매스 콤뮤니케이션」은 세계의 상처와 상심과 죄과를 기독교인들의 양심에 부하하고 대신 기독교인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전달하고 있다.
全裕民(예수회 회원 · 신부 · 서강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