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성심 신심] ㊤ 聖心(성심)에 대한 信心(신심) 一種(일종) 外來品(외래품)?
서양서 비롯된 信心(신심)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聖書(성서)엔 예수聖心(성심)에 대한 구절 안나와
독자___혹 어떤 이는 이것은 너무 철___ 고찰이 아닌가?』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성바바오로의 말씀대로(꼬린토 9·20~23 참고) 한국인을 위해서는 한국인이 되어야 하는 줄을 알지만 외국인의 태세를 완전히 벗어버리기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철학을 공부한 서양인으로서 아래문제를 다루는 것이 너무나 외람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기왕에 부탁을 받은 것을 뿌리칠 수도 없어 펜을 들었으니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을 고찰해 보려고 할때에 우선 그 낱말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성심」이란 말의 뜻을 물어보면 보통으로 대부분 『예수의 거룩한 마음」을 가르킨다고 대답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왜 예수님과 성모님께 대해서만 사용하고 있는가를 따지면 임금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부르듯이 공경하는 마음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성심이라고 부른다는 대답을 듣는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결코 이상한 느낌을 주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점은 『성심이여』라고 예수님의 마음을 부르면서도 어머니에게 말할 때에는 『어머니의 마음이여』 또는 애인에게 속삭일때에 『당신의 마음이여』라고 마음이란 낱말을 호격으로 두면서 부르는 일은 실제로 없다는 것이다. 詩를 읊는 경우에는 예외이지만 우리가 보통으로 어떤 사람에게 존경이나 사랑을 표시하려고 할때에 그 사람의 명칭이나 이름을 직접 부른다. 『신부님!』 『어머니여』 『영철아』 『혜순아』-하는 식으로-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경애를 들어내기 위하여 그 마음을 직접 부른다. 그러면 과연 경애심에서 이렇게 부르는 것일까?
혹은 관례상으로 이렇게 불러오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의 유래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른 신심의 종류와 마찬가지로 성심에 대한 신심은 과격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일종의 외래품이다. 그러기에 이 문제에 관하여 논하려고 할때에 우선 한국인들이 서양에서 비롯한 모든 신심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당면하게 된다. 성서에 나오는 천주의 계시는 물론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예수심에 대한 구절을 찾아볼 수가 없다. 뿐만아니라 예수성심에 대한 특별한 신심은 중세기까지 없었고 동방교회에서는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여기에 한가지 알아두어야할 것은 예수성심이란 본래의 뜻은 마음을 가르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심장을 가르키는 것이다. 심장이라고 하면 물론 사랑의 원천과 상징으로 보는 것인데 과연 한국인들이 마음이라고 하면 심장을 연상하는지 의심스럽다. (계속)
晋(진)토마스(왜관성베네딕또수도원수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