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誤謬와 고민을 겪어야 하면서도 성미술은 가능한 것이다. 마치 우리 인간이 과오를 범하는 약한 존재, 오만하고 비참한 존재이기는 하나 천주의 은총이 뚫고 들어올 틈이 있고 自由 意志를 행사할 여지가 있어서 지극히 불완전한 가운데 천주의 뜻을 받들어 나갈 수 있는 결과 같은 것이다.
현대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일에 열중하는 시대 자연과학과 물질생활에 바쁜 시대라고 아니할 수 있다. 인간을 발견하고 자연을 발견하고 인간의 자유를 극도로 행사함으로써 현대인들은 많은 것을 얻기도 했으나 성실한 것과 희생된 것도 많다. 얼었다는 것은 과거의 여러가지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것과 광대된 우주관이며 상실된 것은 인간이다.
현대이 성미술은 이 人間을 回復하는 作業이며 거기서부터 새로이 시작되어야 한다. 성미술은 단순히 응용된 미술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作業은 이미 시작되고 있으며 현대미술의 「카오스」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고 있다. 현대에 있어서 미술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天主와의 어떠한 態度를 決定하지 않고서는 論할 수도 없고 行爲할 수도 없을만큼 모든 문제가 근본적인 것과 직면해 있는 시대다. 따라서 과거의 기성품의 척도로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現代美術에 대한 가장 큰 비난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로이 시도되는 성미술도 얼핏 친근할 수 없느 ㄴ것이 많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고 알지 못할 것은 미술뿐이 아니다.
특수한 전문지식으로 되어있는 자연과학의 여러가지 현상은 물론 이려니와 정치 · 경제 · 사회 등 일반생활의 양상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천하고 있으며 태산같이 믿고 있던 道德觀도 뿌리부터 흔들려서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속에서 성미술만이 영원한 진리를 표현한다 하여 변화를 거부하고 가만이 있다면 오히려 비정상적일 것이다. 우리 눈에 친근감을 주는 過去의 傑作들도 결코 영원한 것은 아니며 특정한 시대와 환경 속에 속해있던 것이다.
「신은 죽었다」고도 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神을 喪失한 것이다. 광대된 새 宇宙 속에서 神의 福音을 들을 수 있는 能力을 길러야 하겠다.
朴甲成(서울美大學長)